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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이야기

감사의 치유 효과 - 신경과학과 심리학적 답변

by 박노찬 2023.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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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쓰디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합니다. 패기 좋게 시작하였으나 너무나 높은 벽에 부딪혀 계획이 좌초될 때도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이나 실수 등으로 기회를 날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심한 굴욕감과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굴욕적 실패와 정신적 고통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썸네일-감사는정말고통을치유해줄까?
감사는 고통 치유제

정신적 고통을 일으키는 반추

우리는 실패를 경험할 때 왜 정신적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요? 문학과 신경과학을 전공한 앵거스 플레처(<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저자)는 "실패와 불운은 반추라고 알려진 신경 과정을 유발해 정신적 고통을 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일에 실패했을 때 그 실패를 가져온 자신의 부정적 측면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책과 불안, 자기혐오와 같은 부정적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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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고통을 멈추는 방법

플레처는 고통을 멈추게 할 최고의 방법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에 관한 생각을 멈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에 관한 생각을 멈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신경과학적으로 말하면, 반추를 부추기는 자기성찰적 뇌 부위가 점차 이완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불운과 실패는 더 이상 불안감과 자기혐오와 절망의 원인이 아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차분히 생각하게 되고, 통찰력을 얻거나 아니면 그 사건을 점진적으로 잊게 된다고 합니다. 
 
반추를 멈추는 방법은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심리학자들이 시선을 돌리는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시선을 돌리는 효과적인 방법

그것은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의 행동이 시선을 돌리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감사는 중학생으로 하여금 낮은 시험 성적에서 회복하도록 돕고, 암 진단을 받은 어른이 감정을 추스르도록 도우며, 괴롭힘을 당하는 십 대의 자살 충동을 막아주고, 우울증 발생률을 낮춰주며, 추방된 시리아 난민들의 회복력을 키워주었다고 합니다. 
 
2000년 전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 전서 5:18)고 하였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성공과 풍요뿐만 아니라, 실패와 고난에도 감사하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우리는 당시 이 편지를 받아 읽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처한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쓴 시기는 대략 서기 50년 경으로 추정됩니다. 당시는 예수를 믿는 자들이 엄청난 고난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기근에 시달렸고, 동족 유대인 공동체에서 추방되었으며, 지도자들이 끔찍이 죽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들은 다시 오겠다고 한 구세주의 약속을 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습니다. 급기야 교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돌아올까? 내가 엉뚱한 메시아에게 인생을 바친 게 아닐까? 내가 끔찍한 실수를 저지른 건 아닐까?' 
 

감사의 치유 효과

그런 그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편지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앵거스 플레처는 이 사도 바울의 편지를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치유제"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감사라고 하는 치유제가 초기 기독교의 궁지에 몰린 혁명가들로 하여금 역경을 딛고 계속해서 정진하도록 도와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훗날 그들이 헌신한 복음이 결국 세계만방에 퍼지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앵거스 플레처는 "현대의 신경과학도 좌절한 순간에 감사하라는 성경의 조언이 타당하다는 추가적 정당성을 제시한다"고 말합니다. 감사는 우리 뇌가 고난을 딛고 일어서도록 돕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왜 치유 효과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대한 감사 자체는 실패에 대한 분명한 치유책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치유 효과를 발휘하는 것일까요? 
 
신경학적 또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우리의 눈을 나 자신에서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문제의 원인을 나 자신에게서 찾는 반추를 멈추게 하는 것입니다. 시선을 하나님께 돌릴 때,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실패나 불운의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그것 역시 무언인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그래서 결국엔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고, 실패와 좌절을 딛고 계속해서 나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감사 확대법

그런데, 신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어떻게 감사를 표할 수 있을까요? 유물론자 또는 인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독일의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에게서 우리는 확대된 감사의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빵 조각마다, 마음을 붇돋워주는 포도주 한 모금마다, 당신에게 이 은혜로운 선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라. 인간을 생각하라!" 

 
전통 기독교의 입장에서는 인본주의적인 그의 사상을 매우 격렬히 비판합니다. 그는 인간성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교적 관점이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그의 사상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책을 읽어볼 용기는 나지 않고, 간단히 요즘 핫한 구글 바드에게 포이어바흐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대략 그의 사상에 대해 감을 잡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구글 바드의 답변에 따르면 포이어바흐의 철학은 인간의 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존재이며,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만 완전히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또한 종교는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기독교의 본질>(1841)인데, 그 책에서 그는 기독교를 인간 본질에 대한 투영으로, 신을 인간의 창조물로 주장합니다. 또한 기독교의 교리가 억압적이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방해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여전히 논쟁 거리입니다. 
 
물론, 저는 포이어바흐가 인간성의 긍정적 측면만을 부각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죄성에 대한 고찰이 그의 철학에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죄로 인한 인간의 해결할 수 없는 고통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답은 그의 철학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그의 인본주의 철학 안에 담긴 인간 존재의 본질, 즉 사회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서로에 대한 감사와 친근한 관계 맺기를 촉구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앵거스 플레처의 표현을 빌리자면, 포이어바흐가 신을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성 안에 있는 신의 미덕은 존재한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보자면, 인간이 본래 신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선언과 일맥상통합니다. 
 
감사의 주제로 돌아와, 우리는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표할 수 있으며, 우리가 돈을 주고 구매하는 작은 빵 조각 하나에도 감사를 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다면 우리의 감사 대상은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습니다. 포이어바흐의 인본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남의 눈에 띄지 않는 데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까지 감사를 표할 수 있게 이끌어 줍니다. 
 
남들이 잠들어 있는 시간에 묵묵히 거리를 쓸고, 냄새나는 쓰레기를 수거하고, 집집마다 신문과 우유를 배달하고, 하루 종일 아파트 계단을 청소하고, 무거운 짐을 4~5층까지 날라다 주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감사가 솟아오릅니다. 
 

나가며: 반추 대신 감사를!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에 대해 감사로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진다면, 우리에게 닥친 실망스러운 일을 잊어 버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과거를 곱씹는 반추의 고통이 계속될 때, 눈을 들어 신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감사의 제목들을 찾을 수 있다면, 고통은 잊히고, 실패는 지나간 사건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제15장. "실패를 딛고 일어서라"
구글 바드, "포이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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