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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이야기

마음의 평화를 얻는 독서 - 고양된 인지적 반응성 치료법; 독서의 치료 효과

by 박노찬 2023.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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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떠오르는 기억,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활기, 불안한 기대,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 악몽, 빌미가 있을 때마다 생기는 강하고 지속적인 괴로움, 과도한 걱정... 혹시 당신이 겪고 있는 정신 증상은 아닙니까? 이러한 증상들은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요? 

썸네일-마음의평화를얻는독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독서 - 고양된 인지적 반응성 치료법

고양된 '인지적 반응성(cognitive reactivity)'

이러한 증상을 심리학자들은 고양된 '인지적 반응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정신이 인지적 흐름의 물결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증상입니다. 어떤 기억은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고, 어떤 모습은 우리를 우울감에 빠뜨리며, 어떤 생각은 우리를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원인

고양된 인지적 반응성은 조증,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복합적 애도(complicated grief) 등 여러 정신 질환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또 스트레스, 피로, 과도한 자극 등 일상생활의 여러 조건에서 초래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인지적 반응성의 불쾌한 파장을 경험하기 마련입니다. 예상치 못한 모습에 동요하거나, 어떤 기억을 떠올리고 슬픔에 잠기거나, 자꾸만 떠오르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합니다. 그런 불쾌감이 저절로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지속되고 심화되어 정신을 어지럽히고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치료법

현대 정신과 의사들은 이러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 가장 널리 알려진 치료법이지만, 인지적 탈융합(cognirive defusion), 인지적 거리두기(cognitive disancing), 탈중심화(decentering), 분리(detachment), 메타인지적 인식(metacognitive awareness), 메타인지적 모드(metacognitive mode), 맥락으로서 자기(self as context), 자기 거리두기 관점(self-distanced perspective)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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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다양한 치료법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자기 생각을 관찰하듯이 의식에서 살짝 떨어져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온갖 기분과 기억과 인상의 강물에 떠밀리는 대신, 강둑에 서서 우리의 정신적 파도가 넘실거리며 흐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심리적 거리감은 대뇌피질 중앙선 구조(cortical midline structures; CMS)와 섬 피질(insular cortex) 등 감정과 기억 처리 영역에서 뇌 활동을 감소시킵니다. 이러한 감소는 인지적 반응성을 낮추어 우울증, 조증, 범불안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시켜 줍니다. 

 

최근의 한 임상연구에서 정신질환자들에게 심리치료를 한 후 가슴 아픈 영화를 관람하게 하였는데, 환자들은 매우 슬펐다고 말했지만, 그들의 뇌는 물리적으로 감정을 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깊은 슬픔을 의식하긴 했지만, 실제로 느끼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1922년 런던. 1차 세계대전이 끝났고, 유럽 전역엔 총성이 멈추고 킬링필드엔 사과나무와 밀이 심어졌습니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평화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환각에 시달렸고, 어린 시절의 충격이 자꾸만 떠올랐으며,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그녀의 증상을 '신경과민'이라 진단하였습니다. 그녀에게 내려진 처방은 읽기, 쓰기, 생각하기와 같은 지적 활동을 멈추고 편히 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쉬어도 그녀는 환각과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새로운 치료법을 고안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현대 정신의학의 허점을 발견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당시 현대 정신의학의 허점을 발견해 냈습니다. 현대 정신의학을 탄생시킨 18세기 영국의 의사 윌리엄 베티(William Battie)는 정신질환의 원인을 인간 뇌를 구성하는 신경 때문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신경치료를 위해 소량의 포도주나 광천수, 헤나 꽃 같은 순한 마약을 처방하거나, 그냥 환자의 신경이 진정되도록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머리에는 신경계 외에 무엇이 더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희망, 고통, 사랑, 기억, 두려움과 같은 정신(mind)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다시 말해 당시 의사들은 정신질환자의 정신(psyche)을 무시하고 몸(body)만 돌봤다는 뜻입니다. 정신의학은 그 이름의 뿌리를 망각했고, 그러한 망각 속에서 19세기 후반 수십 년 동안 휴식요법(rest cure)만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휴식요법은 말그대로 환자를 무기력한 살덩이로 축소시켰고, 정신은 침묵 속에 꽁꽁 묶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인간성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뇌는 신경을 담고 있는 통이고, 정신은 그저 본능을 거드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몸을 치료하면 그럭저럭 정신도 치료되는 걸로 알았던 것입니다. 환자의 자유의지는 정신질환 치료에 있어서 설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를 만나다

그러나 1842년 뉴욕에서 태어난 윌리엄 제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 정신의 방대한 다양성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는 20대부터 우울증이 있었고, 자살 충동도 간혹 느끼곤 했었습니다. 그는 의사로부터 '신경 쇠약'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휴식 치료법의 남성 버전인 육체노동을 처방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고, 1870년 프랑스 철학자 샤를 르누비에의 기발한 철학 에세이를 읽다가 자신의 정신의학적 치료를 위한 영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르누비에의 <시론> 첫 부분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선택했기 때문에 그 생각을 유지하는 것'이라는 자유의지에 대한 정의가 담겨있었습니다. 제임스는 이 "자유의지에 대한 정의"를 읽는 순간 기분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고, 자신의 정신적 자유를 믿게 되자 신경 쇠약 증상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유 의지에 대한 믿음에 '호의적인' 책들로 자신의 서재를 채워 나갔습니다. 의사의 경고와 달리 책은 정신 건강을 위협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치료의 일부였습니다. 그는 휴식 요법을 중단하고, 긍정적인 책 읽기로 자가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물론 자유의지는 과학이 아닌 형이상학의 범주에 속합니다. 그러나 제임스는 자신의 새로운 치료법이 과학적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어차피 그의 치료법은 자유 의지 자체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에 대한 믿음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효과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요? 자유의지를 믿는 환자에게서 신경쇠약 증상이 완화되었다면, 자유 의지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 믿음의 힘이 사실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제임스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우호적인 책을 꾸준히 읽었고, 우울한 기분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었으며, 1872년 완전이 정신병에서 벗어났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뒤 그는 진로를 바꾸어 하버드 대학 교수진에 합류하여 현대 심리학의 새로운 분야를 구축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는 <심리학의 원리>라는 책을 저술해 정신혁명을 고취했는데, 우리 정신이 특정한 논리적 결정을 내릴 때 "노력했다는 느낌"을 경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느낌은 적어도 정신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믿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6년 뒤에는 <믿으려는 의지>를 발간했는데, 이 작품에서 그는 믿음의 힘을 시험하려면 일단 그 믿음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우리가 스스로 치료할 수 있는지 보고 싶으면 일단 믿고 시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정신 건강에 대한 이 강력한 접근법은 미국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우호적인 책으로 정신건강이 개선될 수 있다는 믿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녀는 그저 즐겁게 독서를 하였고,약간의 정신적 자극이 건강을 호전시킨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의사의 진단처럼 독서는 정신적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치료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또 다른 고통받는 영혼들에게 평온을 제공할 새로운 문학 스타일을 고안해 냈습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책을 쓰다

그것이 바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쓴 <댈러웨이 부인>입니다. 우리 뇌는 좋은 책이나 일상사에 집중하면 차분하고 부드럽게 작동합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의식은 사슬이나 열차처럼 이어져 있지 않고 유유히 흐른다. '강물'이나 '흐름'이라는 은유로 묘사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사고의 흐름, 의식의 흐름 또는 주관적 삶의 흐름이라고 부르도록 하자"라고 하였습니다. 

 

작가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공유하고자 펜을 듭니다. 즉 의식의 일부를 전달하고자 글을 씁니다. "그리고"와 "그러나"와 같은 접속사를 통해 한 아이디어를 다른 아이디어로 전이하고 관계를 수립합니다. 작가들은 수천 년부터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써내려 왔습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지속되는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의 의식의 흐름이 등장합니다. 울프는 독자인 우리가 "자유"를 경험하는 정신적 혜택을 실컷 누리길 바라면서 다양한 캐릭터들과 그들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이어갑니다. 

 

나가며: 독서의 치료 효과

이러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책을 읽을 때 독자들은 차분함을 느끼게 됩니다. 의식의 흐름이 우리를 끌어당겨 우리의 신경을 살살 달래서 심리적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휴식 요법과는 달리 독서는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평온함을 채워줍니다. <댈러웨이 부인>은 실제로 심리적 느긋함을 불러일으켜 울프 자신이 간구하던 치유적 평화를 제공했다고 앵거스 플레처는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제17장, "마음의 평화를 찾아라"에서 평하였습니다. 

 

두통, 불면증, 두려움, 악몽 등은 그저 신경 질환의 증상일 뿐, 휴식을 취하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십니까? 당신의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그 병을 치료할 것을 권해 드립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치료법 중 하나인 독서를 권해 드립니다. 마음의 평화를 더 얻고 싶은 분들을 위해 앵거스 플레처는 아래의 책들을 추천합니다. 

 

● 콜슨 화이트헤드의 <직관주의자>

● 이안 매큐언의 <토요일>

● 토머스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

●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

 

당신에게 가장 우호적으로 보이는 소설이라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책장을 넘기면서 강물이 세차게 흐를 때 당신의 혼란스러운 신경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제17장. "마음의 평화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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