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중 하나인 서머싯 몸의 역작 <달과 6펜스>를 읽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에 출판된 장편 소설이다. 서머싯 몸은 1차 세계대전 중 정보원으로 활동했는데, 과로로 병을 앓게 되었고, 1918년 북스코틀래드 병원에서 요양을 하던 중 이 작품을 쓰게 되었다. 이 소설을 계기로 서머싯 몸의 전성기가 열렸다.
달과 6펜스(The Moon and Sixpence)의 의미
책을 끝까지 읽는 내내 책 제목이 마음이 거슬렸다. "달과 6펜스"와 관련된 직접적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뒷편에 작품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해설에 의하면,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또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쓰였던 은화이다. 이 은화는 부피가 크고 무겁지만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동경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또한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며,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따라서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남자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라 할 수 있다.
폴 고갱(Paul Gauguin)을 모델로 썼다?
많은 사람들이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후기 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이 모델이었다고 알고 있다. 물론 서머싯 몸은 고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고갱이 죽은 타히티를 답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달과 6펜스>가 고갱의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해설자의 관점이다. 서머싯 몸이 마음속에 품고 있던 예술가에 대한 비전을 고갱이라는 소재를 빌려 창조해 낸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고갱과 소설 속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삶은 닮은 면도 많지만 다른 면도 많기 때문이다.
<6펜스>의 세계에 대한 비판
<달과 6펜스>는 <6펜스>의 세계에 대한 냉소적 비판이 담겨져 있다. 저자는 세상의 인습과 욕망에 무반성적으로 매몰되어 있는 대중의 삶에 대해 비판한다. <6펜스> 세상이 주는 안락의 대가는 세속 사회의 인습을 싫어도 견디어야 하는 것이다.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세속의 인습과 가치 대신 자유를 택했다. 그래서 그는 해방의 자유 상태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본능적으로 혐오한다.
말년에 스트릭랜드는 문둥병에 걸린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단지 육신의 쇠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의 내면은 고통스러웠다. 죽음의 공포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기가 모색하는 것을 찾기 위한 시간의 촉박함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더 치열해졌을 것이다. 그는 눈까지 멀게 된다. 그러나 그의 영혼의 눈은 더 밝아졌다. 그는 육체를 상실하는 대신 오히려 낙원의 비전을 보는 정신의 눈을 얻게 된다. 그가 죽기 전 타히티의 오두막에 그린 그림은 인간이 볼 수 없는 어떤 거룩한 것을 그가 보았고, 그것을 인간의 매체로 표현해 내는 데 성공했음을 암시한다.
서머싯 몸의 문학은 세기말적 가치관이 깊게 배어 있다. 현실 삶에 대해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이야기가 많다. 또한 그는 남성 중심 사회 속에서의 정형화된 여성상을 혐오했다. 달리 말하면 남성 중심주의를 무반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여성에 대한 냉소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영원한 욕망에 대한 추구
<달과 6펜스>를 통해 서머싯 몸은 현실 문제를 떠나 모든 이에게 내재되어 있는 보편적인 욕망, 즉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인간의 영원한 욕망이란 무엇일까? 바로 탈출과 해방의 욕망이다.
당신 안에는 어떤 욕망이 있는가?
저자는 책에서 "내 마음속에는 더 모험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변화를, 그리고 세계가 주는 흥분을 체험할 수 만 있다면 험한 암초와 무서운 여울도 헤쳐나갈 각오가 되어 있었다(36쪽)"고 말한다. 당신 안에는 어떤 욕망이 있는가? 욕망은 있지만 현실을 핑계로 현재의 삶을 박차고 나갈 용기는 내지 못하고 있는가?
"사회라는 유기체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그것에 의지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는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이게 마련인데(37쪽)" 나와 당신 역시 그림자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또 세상 평판이 두려워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 평판은 우리의 내밀한 감정에도 위선의 그림자를 드리운다고 저자는 지적한다(53쪽). 또 우리는 어떤 일을 시도해 보기도 전에 시도하지 않는 여러가지 핑곗거리를 찾는다. 그중에 하나는 내 능력이 성공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섣부른 평가다.
그런데 스트릭랜드는 어떠했는가?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69쪽)"라고 말했다. 가슴속에서 계속해서 충돌질하는 무엇이 있음에도 현재의 능력을 보고 지레 포기한다면 헤엄을 못 치니 그냥 죽겠다는 말과 똑같은 것이다. 나와 당신은 죽음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스팔트에서도 백합꽃이 피어날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열심히 물을 뿌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70쪽)
우리 안에도 분명 스트릭랜드와 같은 창조의 본능이 있지 않을까? 그 동안 삶의 여러 정황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존재 전부를 정복하고 급기야 어쩔 수 없는 행동으로 표출되고야 마는 창조의 본능 말이다. 그것을 발견한다면 우리에게도 삶의 전환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일견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흥분되는 것이기도 하다.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
우리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양심의 가책을 받기 때문이다. 저자는 "양심은 우리가 공동체의 법을 깨뜨리지 않도록 감시하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경찰관이다.(77쪽)"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자아의 성채 한가운데 숨어 있는 스파이이다.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 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적은 자신의 주인인 사회의 이익을 위해 우리 안에서 잠들지 않고 늘 감시하고 있다가, 우리에게 집단을 이탈하려는 욕망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냉큼 달려들어 분쇄해 버리고 만다. 양심은 사회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앞에 두라고 강요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인을 전체 집단에 묶어두는 단단한 사슬이 된다. 그리하여 인간은 스스로 제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인 집단의 이익을 따르게 됨으로써, 주인에게 매인 노예가 되는 것이다.(77쪽)"
스트릭랜드는 나이 마흔에 하던 일(증권업)을 집어치우고 처자까지 버린 채 그림을 그리겠다고 외국으로 달아났다. 이해도 안 되고 용서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그는 도덕의 한계를 넘어선 자유를 택했다. 오직 마음의 눈에 보이는 것만을 붙잡으려는 일념으로 말이다(109쪽). 또한 궁핍한 생활쯤 얼마든지 하겠다는 각오로 말이다. 나는 마음속의 본능을 따라 살고자 하지만, 여전히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안전한 삶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는데 말이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에게 안락함을 주었지만, 자신의 영혼을 얽어매왔던 굴레를 과감히 깨뜨려버렸다. 그는 영원한 순례자가 되었다.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나가며: 나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마침내 그는 사람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신성한 것을 알아버렸다.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실로 천재였다. 그는 도덕 마저 뛰어넘은 예술에 사로잡힌 영혼이었다. 나와 당신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달>인가? <6펜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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