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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이야기

테크놀로지로서의 문학

by 박노찬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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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소 생소하지만 문학의 테크놀로지로서의 특성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문학 속에 숨겨져 있는 테크놀로지로서의 혁신성에 대해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아마도 플라톤의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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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로서의 문학

문학 속에서 테크놀로지를 발견한 아리스토텔레스

앵거스 플레처가 쓴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를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케도니아 출신으로서 그리스 아테네의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뒤, 독립적으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플레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의 스승 플라톤과 달리 세속적인 사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화려한 의상과 보석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 관심이 많아 사물이 작용하는 방식에 주목하였고, 늘 과학자의 눈으로 자연을 탐색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끝에 그는 동, 식물학과 생리학, 극작법 등의 경험적 토대를 구축했고, 세상살이에 필요한 시시콜콜한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문학 발명품"을 찾아내는 방법까지 발견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문학 발명품이란 문학 속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발명품들을 말하는 것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 그것들을 모두 찾아내었다는 것입니다. 문학 속에 숨겨진 발명품들을 찾아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중에 담겨 있다고 합니다. 
 
문학 발명품을 발견하는 방법은 크게 두 단계로 구성되는데, 첫째는 문학이 무엇을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고, 둘째는 문학이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아내고자 거꾸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문학이 우리의 감정에 작용하여 행하는 구체적인 심리 효과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고, 후자는 그런 심리 효과를 만들어내는 특정 문학 발명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문학 발명품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겠습니다. 
 

문학 속에 있는 정신 고양제 

1. 플롯 반전(plot twist)

플라톤은 오직 이성만이 정신을 고양시킨다고 하였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관람하는 관객들이 비이성적인, 바꿔 말하면 감정적인 고양을 경험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런 고양은 바로 '타우마제인(thaumazein'이라 할 수 있는데, 요즘 말로 '경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경이란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느끼는 놀랍고도 신기한 감정입니다. 
 
그리스 극작가들은 자신들의 문학 작품 속에서 관객들이 이런 경이로움을 강하게 느끼도록 발명품을 고안해 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플롯 반전(plot twist)'입니다. 한 예로, 다음의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플롯 반전의 경이를 맛볼 수 있습니다. 
 

먼 옛날, 테베의 한 왕자가 자기 어머니와 동침할 운명이라는 신탁을 안고 태어납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 신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양치기에게 자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양치기는 아이를 죽이지 못하고 먼 곳으로 보냅니다. 먼 곳에서 왕자는 다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의 미래가 궁금해 신탁소를 찾아갔고, 거기서 자기 어머니와 동침할 운명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는 그 신탁의 실현을 막기 위해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떠나 먼 곳으로 떠나 테베라는 도시에 당도하였고, 그곳에서 홀로 사는 미모의 왕비를 만나 결국 동침하게 됩니다. 

 
어머니와 아들은 신탁을 막기 위해 합리적 조치를 취합니다. 그런데 기막힌 반전이 일어나, 결국 신탁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반전은 오이디푸스와 어머니에게는 공포를 안겨줍니다. 그러나 관객인 우리에게는 타우마제인(경이)를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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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확장(stretch)

문학 속에 들어있는 두 번째 정신 고양제는 확장입니다. 확장은 플롯이나 캐릭터, 이야기세계, 서술 스타일 및 스토리의 핵심 요소에서 일반적인 패턴을 뽑은 다음 그 패턴을 더 확대하는 것입니다. 위의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경우, 신탁을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어머니의 플롯을 취한 다음, 똑같은 신탁을 피하려고 애쓰는 아들의 전략을 정교하게 풀어가다가 깜짝 반전으로 두 신탁을 완성해 버리는 것입니다. 
 
앵거스 플레처는 이 확장을 현대 심리학의 '관심의 전환'과 연결시킵니다. 우리 인간은 관심사를 밖으로 돌리게 되면, 자아 인식과 관련된 뇌 영역인 두정엽의 활동이 감소하게 되고, 그 결과 자아의 경계선이 사라지고 심지어 무아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이런 신경적 느낌 때문에 우리가 책이나 영화에 푹 빠져서 자신을 망각해 버리는 것입니다. 21세기 신경과학자들은 이러한 망각이 우리 뇌를 자기 초월적 경험으로 이끈다고 주장합니다. 현대 심리학의 창시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를 '영적 경험'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현자들은 이러한 경험을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선(最高善)의 신비한 정신 상태라 하였습니다. 문학에 이러한 선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현대 신경과학자들에 의하면, 확장은 우리에게 관대함과 행복감을 증가시킨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신경회로를 더 큰 존재에 몰입시킴으로써 관대함과 행복감을 높여 우리의 기분을 과학적 샹그릴라(Shangri-la:꿈의 낙원)에 한층 더 가깝게 고양시킨다는 것입니다. 
 

문학 속의 의학적 기능: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관람할 때 사람들이 기분을 좋게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덜 나쁘게도 느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기분은 경이와 같은 긍정적 경험으로 뇌를 채울 때 나오지만, 덜 나쁜 기분은 슬픔과 불안 같은 부정적인 경험을 뇌에서 비울 때 나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이 주는 카타르시스라고 하는 치유과정을 강조했습니다. 카타르시스는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을 정화한다는 뜻의 의학용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비극이 두려움을 정화한다고 <시학>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건강에 유익하기도 하고 해롭기도 합니다. 두려움은 위험한 장소나 위험한 것을 피하도록 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 시달릴 때는 뇌에 해로운 두려움이 쌓이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목한 이러한 감정 상태를 현대 정신과 의사들은 외상 후 두려움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외상 후 두려움은 감정적 자기방어의 한 형태입니다. 다시는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세상과 거리를 두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효과는 고통을 가중시킬 뿐이며, 만성 무력감이나 고립감, 과잉각성, 범불안장애, 분노 및 우울증으로 발전합니다. 
 
이러한 증상에 두루 효과적인 치료법은 없으며, 상황에 따라 다른 치료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 뿐입니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동안의 정신의학 연구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의학 과정을 '자전적 검토'라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트라우마 경험을 떠올리면, 기억의 섬광 정도가 점차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자전적 검토를 통해 신경피질의 장기저장공간에 남아 있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의식의 뒤편으로 밀어내고 무력감, 고립감, 과잉각성 증상을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둘째로 트라우마을 검토하는 동안 눈을 좌우로 움직이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엉뚱한 사이비 과학처럼 들리겠지만, 이러한 안구운동은 최근의 임상 시험에서 안구 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요법(EMDR)이라는 트라우마 치료법으로 그 효과가 인정되었고, 미국 정신의학협회와 세계보건기구, 재향군인회 등에서 공식적으로 추천되고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현대 정신과 의사들이 이런 발견을 하기 전,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나름의 자전적 검토와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요법(EMDR) 기술을 이미 포함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살과 살인, 폭행 등을 합창 구호나 코러스의 춤의 형태로 선보임으로써 관객들에게 과거의 트라우마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것입니다. 관객들은 곡선형의 기다란 의자에 앉아 수천 명의 이웃들과 가족에 둘러싸인 채 자신의 고난을 회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상의 압박에서 벗어나 더 큰 공동체의 품 안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넓은 무대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코러스와 안무를 보며 안구를 좌우로 움직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아가멤논>을 비롯한 여러 그리스 비극들이 퇴역 군인들을 위해 공연되었다는 점은 트라우마 치유에 있어 문학작품, 특히 비극이 주는 치료 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효능감을 키워주는 메커니즘

21세기의 정신의학은 자기 효능감이 외상 후 두려움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우리가 외상 후 두려움을 잘 처리해서 결국 극복할 수 있다는 내적 확신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이 두려움보다 더 강해'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이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다면 외상 후 두려움을 보다 잘 극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500년전 그리스 사람들도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리스 비극에 자기 효능감을 키우는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갔던 것입니다. 
 
희곡 <오이디푸스 왕>에서 작가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을 낳았다고 폭로합니다. 오이디푸스는 내막을 전혀 모릅니다. 희곡 끝부분에 가서야 자기에게 벌어진 일의 공포를 마주합니다. 그제야 비명을 지르며 수년 전에 벌어진 참상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아나그로니시스', 즉 '뒤늦은 인식'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는 '상처지연'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캐릭터 모르게 트라우마를 안길 방식을 구상합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먼저 알아차릴 수 있는 자리에 관객을 배치합니다. 이러한 선지적 배치는 오이디푸스의 심각한 비극을 신처럼 위에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합니다. 관객은 전지전능한 입장이 되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전지전능한 입장은 우리의 뇌에서 깊숙한 감정 영역의 활동을 감소시켜 우리 앞에 놓인 충격적 사건에 대한 완충제 역할을 하도록 해줍니다. 아울러 자기효능감도 높여주게 됩니다. 
 
끔찍한 사실을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벌인 참상을 보지 않기 위해 황금 브로치로 눈을 찌릅니다. 그러나 이런 극단적 행동으로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합니다. 결국 괴로워하면서 "기억에 찔렸다"고 울부짖습니다. 그 기억이 바로 외상 후 두려움의 근원으로 자리 잡아 일평생 수시로 되살아나서 오이디푸스를 찌를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뜻밖에도 코러스 형태로 위로의 손길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합니다. 그것은 재앙 중의 재앙입니다." 오이디푸스는 그 말에 감사합니다. 크로스가 오이디푸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이유는, 그의 비극에 대한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코러스 단원들은 자신들이 겪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비롯된 두려움을 고백하면서 등장합니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의 기억이 회상되고, 그때마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몸을 흔듭니다. 그러다가 오이디푸스가 끔찍한 곤경에 처했을 때, 그들의 기억은 뜻밖에 치유의 원천으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트라우마를 이겨낸 동료로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오이디푸스에게 위로를 제공합니다. 
 
상처 지연은 우리 뇌의 관점 수용 네트워크를 활발히 자극해서 우리가 더 높은 차원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줍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재앙을 더 방대한 우주의 패턴으로 바라보게 해 줍니다. 그리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위로의 손길을 뻗칠 수 있게 해 줍니다. 다른 이를 지원할 수 있다는 이 신경학적 느낌에는 강력한 치유효과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트라우마를 이겨내도록 도와주면서 우리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효능감인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치유 혁신 테크놀로지 때문에 그리스 비극이 완벽한 상태로 승격되었다고 말합니다. 상처 지연(뒤늦은 인식)이 그리스 비극의 정화 효과(카타르시스)를 향상시킨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가며

오늘은 그리스 문학 속에 숨겨져 있는 발명품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한 발명품들은 우리에게 행복감을 키워주기도 하고, 우리의 정신건강을 개선하도록 돕기도 합니다. 실용주의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을 더 멋진 삶으로 이끄는 다목적 도구로 여겼듯이 우리 또한 문학을 통해 우리 삶을 더 멋지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수천 년 전의 문학 작품 속에 이런 멋진 발명품들이 숨어 있었다니 너무나 놀랍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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