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문학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또 '문학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일까?'에 대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몇 달 전 저는 어느 유튜브 채널에서 추천하는 책에 마음이 끌려 구입해 놓은 책이 있었는데, 그동안 읽지 못하고 있다가 오늘에야 비로소 꺼내 읽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에 오늘 소개합니다. 바로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앵거스 플레처 저)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학이 왜 탄생했는지, 또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학의 탄생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문학의 탄생지를 기원전 2300년경의 '우르'라고 말합니다.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땅에 있는 곳으로써 기독교인들에게는 친숙한 지명입니다.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향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르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하면서 달신을 숭배하는 곳이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곳을 떠나 믿음의 여정을 시작하라고 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1. 문학의 탄생지 우르(Ur)
저자는 이 우르를 고대의 혁신도시로 부릅니다. 이곳은 예전부터 상상력이 꽃피는 장소로 숭배되었으며, 이곳 시민들은 밤마다 달을 향해 기도를 하였고, 바퀴와 돛단배, 곱셈표, 그리고 진흙 점토판에 글을 새기는 기술인 남덥(namdub)을 발명해 냈습니다. 바로 이러한 곳에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문학의 최초 발명가라 할 수 있는 "엔헤두안나"가 파견됩니다.
2. 문학의 최초 발명가 엔헤두안나
엔헤두안나는 기원전 2300년경 이라크 티그리스강 유역의 거대한 궁전에서 태어난 공주입니다. 그녀는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어린 시절에 사르곤(Shargon) 대왕의 명령을 받고 우르에 파견됩니다. 목적은 당시 가장 부유한 도시 우르의 풍요로운 재화를 아카드의 황실 금고로 보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깁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소녀가 어떻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왕의 명령을 수행하려면 당시 우르의 거만한 상인들을 다스려야 하고, 재화를 실은 당나귀 부대를 이끌고 멀리 북쪽까지 수송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왕이 그녀의 다른 형제들을 제쳐두고 그녀를 그곳에 보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영리했거나 또는 무자비했기 때문이 아니라, 왕비를 닮아 말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감미로운 말로 상대를 회유하고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온갖 분노를 달랠 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왕명을 받은 뒤 자신의 이름을 개명합니다. 그 이름이 바로 "엔헤두안나"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그녀는 달의 수호 사제로다"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녀는 바지선을 타고 우르의 운하를 미끄러지듯 내려갑니다. 깃털 장식이 달린 예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노를 젓습니다. 하늘 꼭대기에는 달이 성스러운 빛을 비추며 그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수로 양쪽에는 사방에서 몰려온 우르의 뱃사공들과 필경사들, 양조업자들이 낫 모양의 청동 검을 들고 나와 그녀를 위협합니다.
그들 뒤에는 고대 지구라트(Ziggurat) 신전이 우뚝 서 있습니다. 지구라트는 우르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들의 중심지입니다. 거대한 신전 내부에는 높고도 길쭉한 침소가 있습니다. 그 침소에서 달이 습지 여왕과 동침하여 뜨거운 태양 광선과 사랑의 여신을 낳습니다. 이 천상의 존재들은 피에 굶주려있다고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엔헤두안나의 길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엔헤두안나는 지구라트 선창가에 차분이 배를 댑니다. 그녀는 노를 젓던 성직자들에게 목청껏 외치라 명합니다. "엔-헤도-안나. 엔-헤도-안나. 엔-헤도-안나." 그녀는 자신이 도시의 영적 수호자라고 당당히 밝히면서 우르 운하를 에워싼 5만 명의 달 숭배자들 앞에서 대제사장으로 우뚝 설 수 있었습니다. 작명(단어 창작)으로 만들어 낸 힘이자 권력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바지선에서 내린 뒤 1천 개의 계단을 올라 지구라트 내부에 숨겨진 사당에 도착합니다. 그곳에는 하늘까지 닿을 듯이 높은 연단이 있고, 그 연단에는 성스러운 연못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성수로 목욕재계한 뒤 군중을 무릎 꿇리고 큰 소리로 주문을 읊었습니다.
오, 생명을 주시는 이여,
위대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뱀의 늪에서 황소처럼 솟아오르셨으니,
세상 만물을 환하게 비추소서.
때마침 수평선 너머로 천 개의 별빛보다 밝은 새 아침의 환한 여명이 솟아오릅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엔헤두안나가 문학을 발명한 것입니다. 물론 그녀 이전에 여러 찬가들과 구전 문학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문학 발명가는 엔헤두안나라고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말합니다. 그녀가 이렇게 영광스러운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엔헤두안나는 자신의 생각을 점토판에 새겨 넣었고, 그 덕분에 후대의 독자들에게 전해질 수 있었고, 그녀의 창작품이 너무나 훌륭했기에 수메르의 서기관들이 수백 년 간 필사했던 것입니다. 엔헤두안나는 자신의 시가들을 엮어 책자를 내며 말했습니다.
나, 엔헤두안나가 이 책자를 창조했노라-
그 누구도 창조하지 못했던 물건을.
문학의 목적
문학에는 어떤 힘이 있을까요?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문학의 목적을 크게 세 가지로 말합니다. 즉, "서술(narrative)"과 "감정"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목적과 그가 특별히 강조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입니다.
1. 서술(narrative)
문학의 첫 번째 위대한 힘은 바로 "서술"입니다. 쉬운 말로 하면 "스토리"입니다. 스토리는 여러 사건을 연결하고, 처음과 끝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스토리는 "우주는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질문들에 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중앙아메리카의 한 우화에 보면, 어둠 속에서 신들이 모여 빛을 만들기 위한 회의를 합니다. 빛을 만들려면 연료가 필요했습니다. 그러자 거만한 테쿠시스테카틀이 불속에 뛰어들겠다고 자청합니다. 그러나 뜨거운 열기에 겁을 내고 머뭇거립니다. 불꽃이 사그라지려 하자 병약한 절름발이인 나나우아친이 훌쩍 뛰어들었고, 결국 태양이 되었습니다. 이를 본 테쿠시스테카틀은 수치심에 그를 따라 뛰어들었고, 달이 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또, 기원전 2320년경 고대 이집트 왕국의 사카라 피라미드 기록물에는 "선한 영혼은 동쪽 하늘 배를 저어 갈대밭의 물길을 가로질러갈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고 합니다.
2. 감정
문학의 두 번째 위대한 힘은 사랑, 경이, 믿음 같은 감정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오, 낭군이여,
나 그대에게
자유롭게 요청하오니,
나의 주인이 되어 주소서;
내 손길에 그대의 전당을 활짝 열고서
그대의 사랑으로 내 어두운 밤을 감미롭게 하소서.
위대한 번개의 신이여, 힘의 문들을 활짝 열고 우리를 영웅으로 만들어 주소서.
위의 시들은 외로움, 또는 두려움을 물리치고자 적은 시들입니다.
3. 테크놀로지(technology)
테크놀로지는 기술, 혹은 그 기술을 실제로 적용해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한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플레처는 엔헤두안나가 문학을 단지 불멸의 경전으로만 보지 않고 세속적 발명품, 다시 말해 일종의 테크놀로지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테크놀로지란 강철과 실리콘으로 만든 기계장치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추위를 해결하고자 불을 다스리는 기술을 고안해 내고,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사냥 기술을 고안해 내듯, 문학 역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인간 존재 자체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인간은 갖가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우리는 왜 여기에 있을까?', '시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와 같은 의문들입니다. 또 인간은 엉뚱한 욕망과 억제할 수 없는 열정과 가슴 찢어지는 슬픔등을 느낍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결국 뇌를 이고 산다는 게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의 뇌는 답할 수도 없는 온갖 문제를 제기하고, 온갖 감정에 휩싸이며, 그런 감정에 의해 전진하기도 하지만, 해로운 것들을 탐닉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두려워하기도 하며, 노화나 질병, 죽음 등 피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분노하기도 합니다.
문학은 스토리라는 위대한 힘을 이용해 실존적 의구심을 풀어내고, 감정이라는 힘을 이용해 불안정한 영혼에 연대감과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또한 테크놀로지라는 위대한 힘으로 문학은 우리 자신으로서 살아남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 내부로 눈을 돌리게 도와줍니다. 작가도 혁신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엔헤두안나의 뒤를 이어 수많은 작가들은 문학의 위대한 힘을 이용해 삶의 여러 의문에 답하고, 마음에 위로와 희망을 심어주었으며, 새로운 세계를 설계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1000년경 문학은 성직자나 의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서 희망과 위안을 준다는 명성을 얻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치료 주술사는 물약과 연고가 떨어질 수 있고, 신들은 홀연히 사라지거나 냉담해질 수 있지만, 문학은 여전히 마음을 치유하고 영혼을 고양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문학이 고안되었고, 그것이 바로 문학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문학은 인간에게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 감정적 테크놀로지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생기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문학에 눈을 돌릴 뿐만 아니라, 21세기 신경과학을 접목해 문학 발명품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주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주목합니다.
나가며
앵거스 플레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는 책은 정말 대단한 책입니다. 문학보다는 실용서를 읽기에 급급했던 나 자신에게 이 책은 문학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문학에의 끌림을 주기에 충분한 책입니다. 물론 문학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다소 무리다 싶은 표현도 있긴 합니다. 의사나 성직자가 줄 수 없는 것을 문학이 제공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문학이 줄 수 없는 것을 의사나 성직자 또한 주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역할이 다른 것이요, 또한 인간을 돕기 위한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서 상호 보완적인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다만 문학이 갖고 있는 가치와 역할에 대해 우리가 그만큼 잘 알지 못하며, 그만큼 많이 읽고 도움을 얻지 못했다는 현실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학은 단지 우리의 마음의 양식을 키워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현실 속의 다양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까지도 줄 수 있는 훌륭한 삶의 기술(테크놀로지)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신선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문학, 특히 고전 문학에 대한 배고픔이 밀려옵니다. 오늘날은 하루에도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양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 그 책 중에 과연 얼마나 많은 책들이 미래 세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현존하고 있는 고전문학은 실로 대단한 가치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수천 년이 흐르는 중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읽히고 필사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단지 기록술이나 인쇄술의 결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죽기 전에 위대한 인류문화유산인 고전문학들을 섭렵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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