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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이야기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by 박노찬 2023.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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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허구인가? 

 
신화는 단순한 허구일까? 그래서 가치가 없고, 믿어서도 안되고, 읽을 필요도 없는 것일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신화, 특히 그리스로마신화는 허구이며 신앙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이기에 읽어서도 안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이렇게 단순화시켜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제우스(그리스로마신화)

 
단군신화는 허구다라는 말을 들을 때 대한민국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단군을 한민족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그 옛날 홍익인간이라는 통치이념으로 동아시아에 우뚝 선 나라를 세우고, 5,000년의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태동케 한 사건을 단순히 지어낸 허구라고 말한다면 민족의 자긍심과 정체성에 상처를 받지 않겠는가? 
 
창세기를 지어낸 얘기라고 말한다면 유대교나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아마도 크게 화를 낼 것이다. 창세기를 허구라고 말한다면 4,000년 이상의 유대-기독교 문화는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성경의 이야기나 신화 속 이야기를 과학적 논증을 기준으로 진위여부를 따진다면 모든 것이 허구가 되고 만다. 신화는 그 내용의 허구성 여부를 떠나 그 영향력만큼은 실존한다. 신화는 인류의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신화의 가치

 
신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화의 내용은 사실이라기보다는 상상으로 지어낸 것이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SF영화 속 이야기는 이미 오늘날 현실이 되고 있다. 수십 년 전 우리는 스마트폰이나 AI(인공지능)에 대해 상상이나 했었는가?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상상했고, 그 상상은 오늘날 현실이 되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지만, 누군가는 그런 일을 꿈꿨고, 현실화시켰다. 
 
이런 상상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왔을까? 메가스터디 최고강사이자 작가인 최인호는 신화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상상력의 끝은 신화에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화는 모든 창조성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예술분야의 사람들은 반드시 읽어보라고 권한다. 우리의 미래를 보고 싶을 때도 신화를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하였다. 신화 속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미리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성적 논리와 경험적 사실을 기초로 해서 신화를 읽지 말라고 한다. 시인의 가슴과 어린아이의 맑은 눈망울로 읽어야 신화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화의 허구성 논쟁을 떠나 우리는 신화의 실존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신화를 읽어봄으로써 말이다. 
 
위대한 국가와 문명에는 모두 '신화'가 있다. 그래서 각 나라들은 모두 '건국신화'라는 것을 만든다(?). 건국신화는 국민들을 하나로 묶어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한다.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 형성에 신화는 지대한 역할을 한다.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건국신화? 

 
위의 관점에서 볼 때, 성경의 첫 권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건국신화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개명된 이름이다. 20년의 도망자 인생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야곱은 그의 형 에서와의 숙명적 만남을 앞두고 얍복강 나루에서 일생일대의 하룻밤을 보낸다. 그는 홀로 남아 신과의 씨름을 한다. 그 씨름에서 그는 '이스라엘', 즉 신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의 이름을 얻는다. 이 이름이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의 이름이 되었다. 
 

여호와(창세기)

 
창세기는 이스라엘(야곱)과 그의 12 아들들의 가족들이 이집트(애굽)에 이주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위로는 그들의 원류가 어디인지를 파헤치는 족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이고, 이삭의 아버지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유명한 아브라함이다. 그 위로 계속해서 올라 가면 최초의 인간 아담에 이른다. 아담은 인간 아버지가 없다. 그는 하나님(여호와)에 의해 흙으로 창조되었다. 그 이상은 천지와 우주만물의 창조 이야기다. 
 
이처럼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 어디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12지파를 이루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담겨 있는 책이다. 이런 면에서 창세기는 이스라엘의 건국신화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성경을 신화의 반열로 추락시킨다고 해서 발끈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창세기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차지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다. 
 

12라는 숫자의 유사성

 

12라는 숫자는 비단 유대-기독교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스라엘(야곱)의 12아들, 이들의 이름이 곧 12지파의 이름이 되었으며, 신약시대에 와서는 예수님이 12제자를 선택한다. 
 
12라는 숫자는 그리스로마신화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두 신족, 즉 올림포스 신족과 티탄 신족에 있어서도 각각 12신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또 우리에게 익숙한 12간지가 있다. 시간도 12시간을 주기로 오전과 오후를 나눈다. 12달을 주기로 해가 바뀐다. 
 
12라는 숫자는 성수(holy numbers , 聖數)에 해당한다. 두산백과의 설명에 따르면 숫자에는 초자연적인 요소와 결부시켜 신성시하거나 행운을 상징한다고 믿는 길수와 싫어하는 흉수가 있는데, 고대 이스라엘은 천지창조가 7일 동안 이루어졌다 하여 7을 신성시하였고, 그들 부족이 12부족이라 하여 12를 길수로 여겼으며, 6는 좋지 않은 수로 보았다고 한다. 특히 666은 가장 싫어하는 숫자이다. 7과 12가 신성한 숫자가 된 것은, 3이 하늘의 수이고 4가 땅의 수이기 때문에 그것을 더하면 7이 되고, 곱하면 12라는 완전수가 된다는 등에 연유해 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피타고라스의 '완전수, 부족수, 과잉수'의 정의에 따르면 12라는 숫자는 완전수라기보다는 과잉수에 해당한다. 완전수는 어떤 수의 진약수(자기 자신을 제외한 약수)의 합이 자기 자신의 수가 되는 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6의 진약수는 1, 2, 3이다. 이들을 더하면 6이 된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서 요한은 왼쪽으로부터 6번째 자리에 앉아 있다. 완전수의 위치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의심했던 도마는 8번째 자리이다. 8의 진약수 1, 2, 4를 더하면 7로 8보다 작다. 부족수의 자리이다. 한편 12의 진약수 1, 2, 3, 4, 6을 더하면 16으로 12보다 커지는 '과잉수'이다. 이는 충분히 많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박경미의 수학콘서트 플러스, 2013. 12. 12, 박경미)
 
어쨌든 12라는 숫자는 신성한 숫자이며, 충분하고 넘치는 숫자이다. 야곱은 12아들을 얻음으로써 이제 충분한 후손을 얻었으며, 그로 인해 그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하늘의 별과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은 민족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얻게 되었다. 그러기에 창세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건국신화가 되기에 충분하고도 신성한 책이 된 것이다. 
 

신화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두 신족의 각기 12신들의 숫자적 의미를 생각해보자. 성수라는 의미에서 그 신들은 신성시된다. 한편 과잉수라는 의미에서 그들은 모든 신들의 대표가 된다. 또한 각각의 신들의 소유한 능력과 특징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신 또는 인간들의 능력과 특징을 표현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신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든 관계와 갈등, 사랑 등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대해 알 수가 있게 된다.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신화를 뛰어넘는 것들은 없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기에 신화는 인간 세상을 이해하는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스로마신화는 3,000여 년 동안 전승되면서 서구 문화를 꽃피웠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본다. 신화속에 담겨진 인류의 정신세계, 꿈과 이상, 지혜, 도덕과 윤리 등을 보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지에 대해 우리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허구라는 이유로 신화를 무시하고 읽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인류 최대의 문화 유산을 무시하는 우를 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앙과 민족,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로마신화, 또는 단군신화나 기타 민족의 신화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를 통해 우리는 각 민족과 문화에 대해 보다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되고, 각 나라와 민족들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점을 모색하는데 지혜를 얻을 수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참고문헌>
[지금 시작하는 그리스로마신화](양승욱, 탐나는책, 2021) / 두산백과 / 박경미의 수학콘서트 플러스(2013. 12. 12, 박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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