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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이야기

로맨스의 불을 지피는 사랑의 묘약을 소개합니다

by 박노찬 2023.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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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불문하고 청춘의 뜨거운 로맨스를 불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이가 들수록, 관계가 지속될수록 첫사랑의 설레는 신선함은 사라지고, 익숙함과 편안함을 넘어 권태감이 그 자리를 대체합니다. 뜨거운 청춘의 열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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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의 불을 지피는 사랑의 묘약

사랑의 출처는 무엇일까? 

고대 나일강 주민들은 악어의 대동맥에서 사랑이 나온다고 생각했답니다. 중국 신화시대의 황제 신농은 인삼에서 사랑을 찾았고, 아스텍족은 엄청난 양의 뜨거운 초콜릿에서, 사하라 이남의 반투족은 요힘베 나무껍질에서 사랑의 힘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은 위의 다양한 최음제들의 효과를 전혀 입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은 사랑의 힘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주로 비아그라에서 그것을 찾고 있는듯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21세기 신경과학자들은 사랑의 진짜 출처 중 하나를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일인칭 화자인 "나"(I)의 목소리로 전하는 시(詩)입니다. 앵거스 플레처는 그의 책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에서 중국의 한 송가를 소개합니다. 

 

커다란 수레가 덜커덩덜커덩 지나가네,

새파란 잔디 같은 초록색 관복 차림의 판사를 태우고.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하지만 나는 법을 알기에 몸을 떨었네.

 

커다란 수레가 덜커덩덜커덩 지나가네,

루비처럼 빛나는 관복 차림의 판사를 태우고.

내가 원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

하지만 나는 법을 알기에 얼른 멈추었네.

 

우리는 서로 다른 방에서 살아야 하네,

하지만 죽어서는 한 무덤에 거할 거라네.

당신은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나요?

나는 태양의 영원한 빛에 대고 그것을 맹세해요. 

 

이 중국 송가는 불법적인 사랑 행위로 처벌받을까 두려워하는 평범한 여성이 쓴 시입니다. 이런 개인적인 목소리로 쓰인 시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을까요? 앵거스 플레처는 이처럼 나의 목소리로 전하는 시가 우리의 차가운 신경회로에 침투해 사랑의 손길로 포근히 감싸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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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과학적 공식

플레처는 신경과학 전공자답게 사랑의 과학적 공식에 대해 소개합니다. 그는 그 공식을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하기 방식에서 찾습니다. 사랑의 과학적 공식에는 두 가지 성분이 있는데, 바로 "자기 공개(self-disclosure)"와 "경이(wonder)"라는 것입니다. 

 

자기 공개는 개인사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더 은밀하고 개인적인 내용일수록 더 강력한 사랑의 효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평소에 쉽게 털어놓지 않는 비밀이나 엉뚱한 습관,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고픈 소중한 추억이나 개인적인 바람, 두려움, 실수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강력한 사랑의 재료가 진짜 힘을 발휘하려면 "경이"라고 하는 두 번째 성분과 결합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경이는 신기하고도 놀라운 느낌인데, "확장"이라고 하는 문학적 기법을 통해 끌어낼 수 있는 감정입니다. 예를 들면, 위의 중국 송가에서 시인은 자신의 사랑을 밤의 공간과 죽음 이후의 시간으로 확장해 나갑니다.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자신의 사랑을 죽음 너머까지 확장해 가면서 자신의 사랑의 애절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앵거스 플레처는 이처럼 확장을 버무린 자기공개는 강력한 신경효과를 발휘한다고 말합니다. 뇌의 보상 중추에서 도파민 뉴런을 준비시켜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고 합니다. 이런 흥분된 뉴런에 강력하게 불꽃을 지피는 것은 상대방의 또 다른 자기 공개입니다. 이처럼 서로 간에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자기 공개를 계속 주고받을 때, 계속적인 도파민 방출이 이루어져 행복감으로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개인적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고 친밀한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서적 유대감이 형성된 행복한 상태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행복감은 대부분 자기공개의 즐거움에서 나오기에,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은밀한 비밀을 털어놓기만 해도 감정적 유대를 돈돈히 다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점이 사랑의 진정한 경이로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정시의 놀라운 사랑의 힘

앵거스 플레처는 호머보다 1세기 늦게 태어난 기원전 7세기 중반의 사포의 시를 소개합니다. 사포는 호머의 서사시 스타일을 거부하고 나(I)의 목소리로 시를 썼는데, 그리스인들은 그런 시를 릴릭(lyric; 서정시)이라 불렀습니다. 사포의 서정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그는 나에게 신과 같은 존재

그 남자가 

너에게 귀를 기울이고

달콤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매혹적인 웃음을 흘리니

내 마음은 산산조각 난다.

 

너를 바라볼 때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내 혀는 굳어버리고

내 피부는 불에 덴 듯 화끈거린다.

 

플레처는 이 시야말로 진정한 자기공개라고 평하였습니다. 사포는 은밀한 내용, 즉 사귀는 남자가 있는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사포는 여류 시인이었습니다. 동성애적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앵거스 플레처는 동성애가 아니라, 사포의 시가 보여주고 있는 경이로운 시적 확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사랑의 고백을 넘어 마음이 산산조각 나고 혀가 굳고 피부가 불에 덴 듯 화끈거린다는 표현으로 은밀한 감정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사시가 거대함에서 정서적 힘을 얻는다면, 서정시는 친밀감에서 정서적 힘을 얻습니다. 현대 과학은 은밀한 자기공개일수록 더 강력한 사랑의 힘을 발휘한다고 입증하고 있답니다. 사포의 시를 한 편 더 소개할까 합니다. 

 

어떤 이는 기마병이나

군인이나 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나는 당신의 사랑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리라.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가 

최고의 남자를 남겨두고

트로이로 떠나간 이유도

바로 그 이유가 아니었던가?

 

제 자식도 잊고

어머니도 잊은 채,

힐끔 보고서 느낀

 

사랑 때문에. 

 

이 사포의 시는 호머의 <일리아드>의 내용을 용감하게 바꾸어 말하는 시입니다. <일리아드>는 도둑맞은 한 여인, 즉 스파르타의 왕비이자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 때문에 트로이에서 전쟁을 일으킨 기마병과 배와 군인의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사포는 헬레네는 도둑맞은 것이 아니라 사랑의 욕망을 좇아 스스로 떠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포는 트로이의 진짜 이야기의 핵심은 전쟁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것이며, 자기 이야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사랑의 힘을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일리아드>에서 그리는 헬레네의 이미지는 정형적인 여인의 모습입니다. 남편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속을 끓이는 여인입니다. 자식을 헌신적으로 보살피고 부모가 짝지어준 남자의 충실한 아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일리아드>는 헬레네의 은밀한 내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포는 헬레네의 진짜 속마음을 드러내고자 이런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뜨립니다. 헬레네는 도둑 맞은 것이 아니라 사랑에 혹해서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마저, 최고의 남편 마저, 어머니 마저 잊어버렸다고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포의 폭로는 일부 그리스 독자들에게 분명히 반감을 샀을 것입니다. 개인의 은밀한 비밀을 드러내는 것은 반사회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포의 독자들 중 일부는 정형화된 여인 이상의 존재가 되고 싶은 헬레네의 감정에 마음이 쓰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실행에 옮긴 헬레네의 사랑에 감동했을 것입니다. 

 

사포의 헬레네를 향한 친밀감의 표현은 당시에는 혁명적인 시도였습니다. <일리아드>의 원래 감정에 도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 숨겨진 "나의 목소리"를 드러냄으로써 캐릭터의 감정을 살려냈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사포는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연 것입니다. 문학이 헬레네를 대신해 자기 공개를 한 것입니다. 이제 문학은 어떤 스토리든지 택해서 사랑 이야기로 바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삶에 더 많은 사랑을 원한다면

사랑은 우리 뇌가 경험할 수 있는 대단히 강력한 보상 감정입니다. 기분을 좋게 하고 기운을 북돋우며 모든 일상을 즐기게 해준다고 과학은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앵거스 플레처는 여러 시대의 시를 통해 경이가 결합된 은밀한 자기공개를 찾아보라고 권합니다. E. E. 커밍스의 다음과 같은 시를 말입니다. 

 

아무도 모를 은밀한 비밀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품고 다닙니다.(내 마음속에 고이 품고 다닙니다)

 

또,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등의 소설에 등장하는 일인칭 서술과 대화 속에서 수많은 사랑의 표현들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나가며 : 진정한 사랑의 묘약은? 

문학 속에 담긴 서정적 목소리는 우리의 로멘스에 다시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확인했습니다. 사그라진 로맨스의 불꽃을 원하십니까? 이제 비아그라나 그 어떤 최음제보다 강력한 문학 속의 발명품을 구입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문학을 읽고 마음의 교양도 쌓고 강력한 사랑의 묘약도 얻고 멋지게 발전한 나의 모습 상상만 해도 좋지 않습니까? 문학 책 한 권 사러 가야겠습니다. 

 

<<참고문헌>>

앵거스 플레처, <우리에게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제2장. "로맨스의 불을 다시 지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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