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억울한 재판을 받고 독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는 조그만 억울한 일을 당해도 발끈하며 괴로워하는데,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배워볼까요?
소크라테스의 비결
극심한 고통을 주는 독을 마시면서도 소크라테스는 괴로워하지 않고 평온함을 유지한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죽음의 비결에 대해 간단한 답변을 남겨놓았습니다.
"진정한 철학자는 자신의 철학으로 죽음을 훈련한다."
그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 파이돈이 플라톤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면서, 소크라테스가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이솝을 흉내 내며" 보냈다고 전했습니다. 플라톤은 의아해했습니다. 이솝은 어리석은 동물에 관한 우화로 소문난 이야기꾼이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는 마지막 순간을 왜 이런 유치한 동물 이야기로 허비했을까요?
<이솝 우화>는 단순한 동물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인간성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잘못을 대놓고 지적할 때 화를 내기 때문에 이솝은 여우나 노새, 사자 등을 내세워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이솝과 마찬가지로 은밀한 풍자가였던 것입니다.
이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영원한 평정심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고대 풍자가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결국 풍자 속에 담긴 세 가지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1. 패러디(parody)
풍자가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발명품은 바로 "패러디"입니다. 패러디는 과장된 모방입니다. 요즘은 정치인인나 연예인들의 말투나 행동을 과장되이 모방하는 패러디가 유행입니다. 패러디는 서사시의 진중함이나 종교의 엄숙함을 희화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모습은 대단히 인간적이며 우스꽝스럽습니다. 사실은 우리 내면에 숨겨진 인간성을 신들의 모습으로 표출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암시(insinuation)
풍자가들의 두번째 발명품은 "암시"입니다. 암시는 논리학자들이 불완전한 삼단 논법이라고 부르는 방식으로 상대에게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독자여, 당신이 바보라고 가정해 보라. 그리고 당신이 국회의원이라고 가정해 보라. 아, 그 말이 그 말이지."
위의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을 보면, 첫째로 당신은 바보이며, 둘째로 당신은 국회의원입니다. 결론은 국회의원은 바보들이라는 말입니다. 암시는 두 가지 기능을 합니다. 바보들을 비판하면서 풍자가를 영리하게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3. 아이러니(irony)
풍자가들의 가장 강력한 발명품은 "아이러니"입니다. 아이러니는 다른 사람이 못 보는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기원전 6세기 시인 히포낙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여자가 남자를 굉장히 기쁘게 하는 때가 두 번 있다. 바로 그의 결혼식 날 밤과 그녀의 장례식이다."
위 글에서 아이러니는 마지막 두 단어에 들어있습니다. 그전까지는 결혼의 즐거움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장례식'을 말하는 순간 히포낙스는 우리를 더 높은 위치로 끌어올려, 저 아래 어리석은 신랑들이 모르는 씁쓸한 진실을 깨우치게 합니다.
이처럼 풍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서 높이 고양시켜 줍니다. 플라톤은 풍자 연구를 통해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 역시 풍자를 사용했고, 더 혁신시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크라테스의 풍자 혁신
소크라테스의 풍자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담아놓은 플라톤의 <메논(Menon)>이라는 책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학생 메논에게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도 미덕이 뭔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시작됩니다. 이 말에 메논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수사학자 고르기아스는 미덕이 뭔지 확실히 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고르기아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잊어버렸다네. 그러니 자네가 내게 상기해줄 수 있겠나? 아니, 그냥 자네는 미덕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해보게. 자네와 고르기아스는 틀림없이 같은 생각일 테니까."
여러분은 이 대화에 담긴 풍자가 무엇인지 발견하셨습니까? 바로 암시입니다. 첫번째 점은 현명한 사람은 미덕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점은 고르기아스는 미덕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고르기아스는 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또 하나의 암시가 있습니다. 첫째로 고르기아스는 현명하지 않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 메논은 고르기아스와 같은 생각이기에, 결론은 메논 역시 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메논은 이런 암시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플라톤은 <메논>을 통해 이런 메논의 순진무구함을 과장하여 순진한 젊은이들을 어수룩한 바보로 희화합니다. 이것이 풍자의 한 요소인 패러디입니다. 거기에 세번째 발명품인 아이러니를 추가하는데, 메논이 미덕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하자,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했다고 플라톤은 적습니다.
"친애하는 메논, 친절을 베풀어서 자네가 아는 것을 나한테 말해주게. 맹세컨대, 나는 자네에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네."
여기서의 아이러니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크라테스가 정반대로 메논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질문을 하지만, 실제로는 질문을 던지는 자가 가르치는 자라는 숨겨진 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고대 풍자가들의 세 가지 발명품을 한 대화 안에 합쳐 어리석은 메논을 조롱합니다. 이로써 플라톤은 자신 역시 스승 소크라테스에 못지않은 풍자의 달인임을 입증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에 비해 대단히 혁신적인 점은 없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플라톤의 풍자에 소크라테스식의 반전이 숨어있다고 말합니다. 그 점이 혁신적이라는 것인데, 여러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까?
플라톤의 풍자 혁신
그 반전은 바로 이 글을 읽는 우리 자신이 메논이라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메논>에서 풍자의 방향을 바꿉니다. 우리의 적들을 풍자하는 대신 우리 자신을 풍자합니다.
플라톤은 메논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패러디합니다. 우리 모두는 한 두가지에 대해 배워서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덕이 무어냐고 물으면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말이 많아질수록 모순과 혼란과 근거 없는 헛소리로 빠지게 되고, 결국 우리가 생각보다 아는 게 없음을 드러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메논>을 읽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고자 함인데, 결국 소크라테스에게 깨우침을 구하는 메논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우리는 <메논>을 읽으며 메논보다는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역시 메논과 같이 어리석은 존재라는 것을 플라톤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메논이고, <이솝 우화> 속의 여러 동물들이 바로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자기 풍자의 비밀
풍자는 원래 남들을 비웃기 위해 고안된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적 연구는 남들을 비웃는 것이 항상 건강에 좋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남을 비웃을 때 일시적으로 우월감이 들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남을 비웃는 것은 마음이 불안해지고 혈압이 상승하여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을 높인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풍자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연구 결과, 풍자의 방향만 바꾸면 유익을 가져다 준다고 합니다. 즉 남을 비웃는 대신 자기 자신을 비웃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신경 물질인 오피오이드(아편 유사 물질)가 분비되고 혈중 코르티솔 수치가 떨어지며 스트레스가 낮아진다고 합니다. 또 장기적으로 볼 때, 불안감이 줄어들고 정서적 회복력이 길러지며 타인과의 유대도 잘 맺게 된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남들을 비웃는 대신 남들과 함께 웃으면 뇌에서 고통에 대한 내성을 키워주는 엔돌핀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또한 셀프 아이러니(self-irony)를 통해 이러한 진통 효과를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고 합니다. 셀프 아이러니가 전두엽의 관점 수용 네트워크를 뒤집어 우리 자신 밖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리된 상태에서 바라볼 때 감정적으로 느껴지는 고통의 강도가 줄어들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가며 : 평정심을 높이는 방법
소크라테스와 같이 초월적 평정심을 얻는 방법을 알기 위해 우리는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그 비결은 남을 비웃는 대신 자신을 비웃는 것입니다. 바로 셀프 풍자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셀프 풍자를 할 수 있을까요? 바로 내가 진짜로 메논이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Menon의 이름에서 뒤의 세 철자를 떼어내면 바로 Me, 나 자신이 됩니다. 아니면 메논이라는 이름 대신 우리 자신의 이름을 넣고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누며 <메논>을 읽는 것입니다.
또한 앵거스 플레처가 소개하는 다음의 책들을 읽어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패러디와 암시와 아이러니들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책들 안에 있는 풍자의 주인공이 바로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면, 나 자신에 대해 객관화시킬 수 있고, 심각한 문제와 고민들 역시 유연한 자세로 대하며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학교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면, 아리스토파네스의 고대 그리스 희극 <구름>을,
● 세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한다면,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 사회주의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을,
● 자본주의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싱클레어 루이스의 <배빗>을,
● 고대 현자에게 깨우침을 얻고자 한다면, G. V. 데사니의 <하테르의 모든 것>을,
● 대중 오락물이 당신의 뇌를 고친다고 믿는다면,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의 <무한한 재미>를,
● 당신이 책임자가 되면 세상이 더 좋아질 거라 확신한다면,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 대기권까지 빠르게 올라가고 싶다면,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앵거스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제4장. "상처를 딛고 올라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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