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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이야기

분노를 떨쳐내는 방법, 어디 없나요?

by 박노찬 202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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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마다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나의 마음을 괴롭게 합니다. 분노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쉽게 떨쳐낼 수가 없습니다. 어찌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괴로워하시는 분들 많이 계시죠? 오늘 그 해법을 함께 찾아봅시다. 

썸네일-분노를떨쳐내는방법
분노를 떨쳐내는 방법

분노는 왜 생길까? 

분노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저자 앵거스 플레처는 자신의 책에서 "우리 뇌는 정의에 대한 욕망을 타고났다."라고 말합니다. 이 정의에 대한 욕망, 달리 말하면 공정성에 대한 뇌의 갈망 때문에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만날 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심리학자들은 이 갈망이 워낙 강해서 피해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공정성을 집행하려고 재산과 건강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고 말합니다. 누군가가 이웃을 속이면 부당함을 느끼고, 가해자에게 법의 심판을 내리게 하려고 자신까지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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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정의의 문제

그런데 정의구현에 대한 우리의 지나친 생물학적 갈망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사회적 문제로서, 누군가가 잘못했다는 확신으로 우리 뇌가 흥분하면 그 잘못을 꾸짖으려는 신경학적 욕망이 너무 강해져 집단 폭력을 행사하거나 이례적으로 잔인한 처벌을 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신뢰와 평화 대신 집단적 공포와 불행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개인적 문제인데, 우리 뇌가 삶의 불공정성에 집착하면 할수록 우리는 분노와 억울함과 같은 나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 결과 서로 깊이 신뢰하고 교류하는 대신, 고립된 채 증오심만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공감의 균형추가 필요

그렇다면, 지나친 정의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공감이라는 균형추를 통해서입니다. 우리 뇌는 정의의 부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감이라는 균형추를 개발해 냈는데, 대뇌 피질의 '관점 수용 네트워크'라는 최신 신경 회로에 의해 작동된다고 합니다. 이 네트워크는 가해자의 관점에서 잘못을 상상한 다음, 정상 참작 요인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나 거의 그런 요인이 존재하며, 그때 우리는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용서를 통해서 완전한 정의 구현에 따른 가혹한 사회적 결과를 방지하고 끈질긴 분노와 불신에 따른 부정적 효과에서 우리 뇌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감은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해자가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확실히 알아낼 수가 없고, 그저 추측하는 것일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감력을 개선할 도구가 필요해집니다. 
 

사과

그 도구는 바로 "사과"입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고 유감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그렇게 해서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라는 단순한 공식이 우리 뇌의 관점 수용 네트워크를 자극해서 가해자의 입장에서 잘못을 바라볼 수 있게 하고, 그 결과 가해자가 애초에 그런 잘못을 일으킬 의도가 없었다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시는 그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가해자의 맹세에 너그러운 용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과 뒤에 숨겨진 신경 메커니즘입니다. 
 
하지만 사과 역시 항상 효과를 발휘하지는 않습니다. 가해자가 거짓 사과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뇌는 공감 회로와 상담을 하고 난 뒤, 그 잘못이 의도적이었다고 판단하면 가해자의 사과를 묵살하고, 반대로 가해자가 뒤늦은 후회를 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었겠다고 판단하면 그 사과를 믿고 관용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이 내면의 저울은 완벽하진 않지만, 역사적으로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가해자가 확실히 유죄일 경우엔 정의의 칼을 휘두르게 했고, 의심스러울 땐 용서하는 쪽으로 기울게 해 왔습니다. 따라서 사과는 우리로 하여금 머리로는 공정하게, 마음으로는 너그럽게 살아가게 하는 도구인 셈입니다. 
 
우리 뇌가 사과를 받아들이면 분노와 피해의식 같은 부정적 감정은 줄어드는 반면, 신뢰와 사랑 같은 긍정적 감정은 늘어나게 됩니다. 그 결과 처벌 충동을 떨쳐버리고 안도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어 정신 건강이 개선되는 것입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확실한 사과

앵거스 플레처는 보다 더 확실한, 어떤 상황에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확실한 사과가 있다고 소개합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진심을 납득시키는 사과"입니다. 플레처는 문학 작품들 속에 들어 있는 그런 사과를 소개합니다. 사과의 진정성은 말에 있지 않고 말 뒤에 숨겨진 마음에 있는데, 실생활에서 숨겨진 마음의 진실성은 100% 확신할 수 없지만, 문학 속에서는 캐릭터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캐릭터의 사과의 진실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과의 진실성은 사과의 신경학적 증거인 '회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릭터가 단순히 통곡하거나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저게 다 자신이 한 짓을 후회하기 때문이야. 비판을 받아들이고 실수를 뉘우치기 때문이야.'라고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오이디푸스 왕>에서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하여 자식을 낳았을때, 관객들의 뇌에서는 정의 회로가 뜨겁게 달아오릅니다. 그런데 오이디푸스가 "으아악! 으아악! 사실이구나! 내가 정녕 불경스러운 아들이구나!"라고 소리치는 순간, 그의 진심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외침은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라는 사과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비명 섞인 외침은 공식 사과 못지않게 효과적입니다. 신경 회로적인 관점에서 볼 때 격식을 차라지 않는 즉흥적 외침은 그가 실시간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외침은 날조될 수 없기에 반사적으로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공감 발생기(Empathy Generator)

이렇게 캐릭터의 회환을 순식간에 파악하는 장치를 플레처는 "공감 발생기"라 하였고, 소포클레스의 위대한 발명품이라 칭하였습니다. 이 발명품은 우리를 타인의 마음속에 있는 후회라고 하는 의심할 수 없는 진실을 보여주고 그를 향한 연민의 마음으로 이끌어 줍니다. 
 
이 자발적인 후회는 우리의 뇌에 공감을 불러일으켜서 냉정한 복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고, 우리 스스로를 폭군이 되지 않게 합니다. 후회는 사과와 동일한 기능을 발휘합니다. 우리 뇌를 자극해서 완벽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용서를 촉구하게 됩니다. 
 

나가며 : 문학을 통한 용서의 연습

우리는 삶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부정의하고 불공정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분노에 휩싸이게 되고, 그 마음이 해결되지 않고 지속될 때 가해자가 아닌 자신의 정신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이러한 분노의 감정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오늘은 앵거스의 플레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의 제3장 "분노를 떨쳐내라"를 통해 어떻게 분노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면 그를 용서할 수 있고, 나 스스로도 분노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기에 플레처는 한 가지 더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그것은 문학을 통해 용서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잘못과 후회를 보며 그를 공감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연습을 통해 우리의 신경 세포를 더 강하고 더 자주 공감할 수 있도록 길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사건에 대한 집단적 분노와 개인적 스트레스를 줄여 우리 사회를 더 포괄적이고 풍요로운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게 됩니다. 
 
플레처는 좀 더 섬세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문학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예로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 제임스 볼드윈의 <산에 올라 고하라>, 토마스 하디의 <무명의 주드>와 같은 작품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아무리 엄격하다고 해도, 캐릭터의 후회가 진실하게 들릴 문학 작품은 많다는 것입니다. 
 
문학을 통해 정의에 대한 원초적 열정뿐만 아니라, 공감과 용서, 친절이라는 온정도 키워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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