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과 철학 이야기

나르시시즘의 재발견 : 자아도취인가, 자아의 신화인가?

by 박노찬 2025. 1. 25.
반응형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서문에는 나르키소스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르키소스의 전설을 책 서문에 썼다는 것은 이 책이 나르시시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런데 <연금술사>에 기록한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우리가 들어온 종전의 이야기와는 좀 다르다. 

사진-나르키소스
나르키소스

 

오스카 와일드의 나르키소스 이야기

<연금술사>라는 책에서 파울로 코엘료는 사막의 오아시스에 살고 있는 한 연금술사를 소개한다. 그는 대상들 중 한 명이 준 책을 읽는다. 표지가 떨어져 나가 제목은 알 수 없었지만, 저자 이름은 오스카 와일드였다. 책을 읽던 중 연금술사는 나르키소스에 관한 이야기에서 눈길을 멈춘다. 

 

그 역시 나르키소스의 전설을 알고 있었다. 우리도 흔히 알듯,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은 나르키소스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는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다. 

사진-수선화(나르키소스)
수선화(나르키소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는 결말이 달랐다. 나르키소스가 죽었을 때 숲의 요정 오레이아스들이 호숫가에 왔는데, 호수가 쓰디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요정들이 묻는다. "그대는 왜 울고 있나요?" 호수가 대답한다.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어요." 그러자 요정들이 말한다. "그렇겠네요. 우리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에 반해 숲에서 그를 쫓아다녔지만, 사실 그대야말로 그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 순간 호수는 의아스럽다는 듯이 요정들에게 묻는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그러자 요정들이 놀라서 반문한다. "그대만큼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호수는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헐! 참으로 어이없는 호수의 대답이 아닌가? 그런데 이 이야기를 읽은 사막의 연금술사는 "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다!"라고 감탄을 터뜨린다. 

반응형

 

나르키소스도 울고 갈 호수의 나르시시즘

당신은 이 이야기를 읽고 무엇을 느꼈는가? 나는 호수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진정한 나르시시스트는 호수였던 것이다. 모두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쫓아다녔지만, 호수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보단 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매료된 것이다. 나르키소스가 죽어 더 이상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추어줄 거울이 사라졌으니 어찌 아니 슬프겠는가? 

 

나는 호수를 진정한 나르시시스트라 부르고 싶다. 나 또한 호수와 같은 나르시시스트가 되고 싶다. 또한 당신 역시 못말리는 나르시시스트가 되라고 부추기고 싶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진정한 나르시시스트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세상이 살만하지 않겠는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면,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숲의 요정들처럼 자신의 아름다움보단 타인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숲의 요정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예쁘고 깜찍하고 귀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런데도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나르키소스의 미모에 빠져 그를 추종했던 것이다. 

 

남의 아름다움을 쫓는 요정들보다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나르키소스나 호수가 훨씬 낫지 않겠는가? 또한 타인의 아름다움을 비쳐줄 수 있는 나르시시스트가 된다면 더욱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신의 형상

성경 창세기 1장 27절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또 31절에서는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임을 인정한다면, 어찌 심히 보기 좋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살펴보자. 나의 외모뿐만 아니라, 나의 생각, 나의 내면을 살펴보자. 아름다운 구석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지 않겠는가? 아흔아홉 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하나쯤은 마음에 드는 것이 있지 않겠는가? 

 

우리 막내 딸은 도덕 시험 100점을 맞았다고 자랑을 한다. 내가 보기에 행실은 100점이 아닌데, 자기는 도덕 100점이라고 칭찬을 해달라고 한다. 부모로서는 수학이나 영어를 100점 맞았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아무튼 한 가지라도 100점을 맞고 1등이라 자부하는 딸이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주요 과목 성적을 높여보라고 학원을 보내주겠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시험 성적을 잘 얻기 위해 조바심을 내지도 않는다. 공부엔 재능이 없는 건가? 그래도 요즘은 조금 노력해 보려는 시늉을 하는 것 같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뚜렷한 꿈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안에도 꿈틀대는 무엇이 있을게다. 하나님의 형상을 담고 있는 존재니까. 부디 그것을 빨리 발견해서 자아의 신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평균 100점을 1등이라 하고 우러러본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모든 일을 잘 하는 건 아닐 게다. 또한 모든 일을 기쁘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 게다. 어쩌면 부모 등쌀에 못 이겨 학원을 다니며 억지로 올린 수동적인 100점이라면 그의 마음은 과연 기쁘기만 할까? 무거운 짐이 그의 마음을 억누르고,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고 아우성치지는 않을까? 

 

한 가지라도 1등이면 일등인게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성적이 꼴찌인들 어떠하랴. 자기가 잘하는 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하며 살 수 있다면 그 인생은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나르시시즘. 과연 자아도취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우울한 시대엔 자아도취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아도취하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2025.01.25 - [문학과 철학 이야기]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의 "자아의 연금술"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의 "자아의 연금술"

파울로 코엘료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의 하나인 파울로 코엘료. 그의 책은 전 세계 168개국 73개 언어로 번역되어 무려 1억 35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1947년 리우데자네이루 태생. 록 음악

2ssue2ssue.tistory.com

2024.03.21 - [문학과 철학 이야기] - 사회적 통념을 뒤집은 예술가들 : 장 밥티스트 샤르댕, 토머스 존스, 크리스텐 쾨브케

 

사회적 통념을 뒤집은 예술가들 : 장 밥티스트 샤르댕, 토머스 존스, 크리스텐 쾨브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우리의 불안을 치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예술을 통한 불안의 치유는 어떻게 일어날까? 그것은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방법을 통해서다. 오늘

2ssue2ssue.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