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에 대한 기록
성경 창세기의 첫 단어는 "태초"로 시작한다.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아니면 그 이상의 시간 너머에 현재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지구, 이 우주라고 하는 세상의 시작이 있었다. 창세기는 '시작'에 관한 책이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음을 성경은 말한다. 물론 시작이 있음은 끝도 있음을 내포한다. 물론 끝은 또 다른 시작을 내포한다. 어쨌든 모든 일에는 시작점이 있고, 창세기는 태초라는 현 세상의 시작점에 대해 기록해 놓았다.
시작의 주체
성경의 두번째 단어로는 "하나님"이 등장한다. "천지(세상)"를 있게 한 주체이다. 이 세상이 존재하게 된 최초 원인을 성경은 "하나님"이라고 명시한다. 현존 인류의 지혜로 다 밝힐 수 없는 복잡하고 난해한 이 세상을 만든 이가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오랜 시간의 진화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진화론과는 대척점을 이룬다.
무(無)에서 유(有)로의 창조
세상이 존재하게 된 사건을 성경은 "창조"라 명명한다. 국어사전은 창조에 대해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이라고 설명한다. 이 세상은 태초 이전에는 없던 세상이다. 태초라는 시점에 하나님(God)에 의한 창작물(창조물)이다. 처음 지구의 모습은 "혼돈"의 상태였다. 영어로는 "chaos"(카오스)이다. 국어사전에는 "마구 뒤섞여 있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 또는 그런 상태.", "하늘과 땅이 아직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라고 쓰여있다. 유사어로는 무질서, 혼란을 들 수 있다.
과정적 창조
왜 전능한 하나님이 지구를 창조할 때 처음의 모습이 무질서였을까? 모든 일에는 과정이 필요하다. 수만 가지 부품이 들어가는 자동차가 완성되기까지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완성된 차의 모습은 너무나 멋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복잡한 조립의 과정은 전문가가 아닌 한 이해하기 어렵다. 분해해 놓은 자동차를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일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하나님의 천지창조 역시 과정이 있었다. 과정에는 시간이 동반된다. 이 '시간'이라는 측면에서 창조는 일정부분 진화론과 접합점이 생긴다. 즉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 창조를 진화적 창조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 진화적 창조이든 과정적 창조이든 창조에는 시간이라는 과정이 존재한다.
시간의 창조(1주일의 탄생)
그 창조의 시간을 성경은 오늘날의 7일로 표현한다. 정확히 말하면 6일간의 창조와 하루의 안식이다. 이렇게 세상의 시간은 7일이라는 주기로 돌아가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주간 단위의 삶이 수천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는 사실이 놀랍다. 또한 노동과 휴식의 조화가 새로운 한 주를 있게 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에는 휴일이 없었다고 한다. 노예들은 휴일 없는 노동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제는 하루 휴일은 기본이고 이틀을 쉬는 사람들도 있고, 사흘을 쉬는 사람들도 있다. 성경의 주 1일 안식의 개념보다 진일보한 세상에 살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무질서에서 질서로의 창조
창조의 과정을 살펴보면, 혼돈과 공허, 흑암과 물로 뒤덮힌 세상은 하나님의 영의 운행으로 빛이 있게 되고, 밤낮이 구분되었다. 물이 둘로 나뉘고 하늘이 생겼다. 하늘 아래의 물이 모이자 바다와 육지가 구분되었다. 육지에 풀과 채소와 나무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태양과 달을 포함한 광명체들이 생겼고, 그것들로 인해 하루(밤낮)라는 시간과 계절과 년의 주기가 만들어졌다. 무질서에 질서가 생기고, 현존하는 우주의 체계가 잡히게 되었다.
각종 생명체의 창조
바다에는 물고기가, 공중에는 새가, 땅에는 가축과 기는 것과 짐승들이 탄생했다. 나열된 이 모든 것이 하나님(God)의 눈에 보기 좋았다.
하나님의 형상의 창조
창조의 마지막은 바로 우리 "사람"이다. 사람의 탄생은 성경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한다. 창조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할 뿐만 아니라, "신의 형상"으로서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었을까? 그 목적을 성경은 분명히 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는 것이다.
즉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대리인이고, 이 세상의 관리자(청지기)로 태어났다. 여기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정립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창조된 피조물이자, 만물(세상)에 대해서는 관리자이다. 착각하면 안 되는 부분은 관리자이지 주인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는 세상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도록 하는 것이다. 무질서와 흑암의 세계를 질서와 빛의 세계로 창조했듯이, 혼란스러운 것은 질서가 잡히게 하고, 어두운 세상은 밝은 세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모든 생물이 각각의 영역에서 번성하도록 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개발과 전쟁, 무자비한 포획으로 인한 각종 종의 멸종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지만, 지구의 주인은 아니며, 선한 청지기여야 함을 성경은 분명히 밝혀두고 있다.
묵상
나는 어떻게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을까? 내가 존재하게 된 최초의 원인은 하나님(God)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 존재 목적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존재 의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세상의 무질서와 공허, 흑암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방관자로 있는가, 적극적 능동자로 참여하고 있는가? 나의 안위와 일신만을 위해 살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나와 관련된 세상 속에서 오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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