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은 대개 긍정적인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을 보면 답답해 보입니다. 융통성이 없다는 것은 사고방식이 유연하지 못하고, 고집스러워 보입니다. 반대로 융통성이 있는 사람은 사고가 경직되어 있지 않고, 여러 상황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키며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개 융통성 있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융통성,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그러나 융통성이 과연 좋은 점만 있는 있는 것일까요? 너무 융통성이 없어도 안 되겠지만, 융통성이 지나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융통성이 지나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융통성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융통성의 장점
현대 사회는 참으로 융통성이 많은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답도 다양합니다. 직업의 수도 너무 많습니다. 상품과 서비스의 수도 너무 다양합니다. 새로운 것들이 날마다 세상에 쏟아집니다. 좋아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것들을 다 경험하기엔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가능한 한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삶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무한 탐색 모드"입니다. 이 말은 <<전념>>의 저자인 피트 데이비스가 현대사회를 표현한 말입니다. 현대사회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어서 한 가지 선택지가 싫증 나면 또 다른 선택지를 찾아 나설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무한 반복할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무한 탐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일면 좋은 것입니다. 그야말로 융통성이 많은 것입니다. 한 가지 일에 실패했거나 싫증이 나거나 자신과 맞지 않을 때는 또 다른 일을 찾아 나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러한 융통성은 젊은이들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자아, 즉 부모의 기대에 의해 형성된 자아를 버리고, 진짜 자아를 찾아 나서는 데 있어서 참으로 유용합니다. 다양한 것들을 체험해 보면서 진짜 자신과 맞고 사명감도 생기는 일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융통성, 즉 무한 탐색의 가능성은 우리에게 새로움을 가져다 줍니다. 현대 사회는 새로운 것들이 날마다 탄생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시한부입니다. 길어야 100년입니다. 그래서 유한한 인생 속에서 가능한 많은 새로운 것들을 즐기고자 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생겼습니다. 일명 "욜로(YOLO)"라는 것입니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는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삽니다. 그래서 잘 살아야 하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고 잘 사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과 함께 오늘 하루하루의 삶을 즐기며 살고자 하는 라이프 스타일이 생겼습니다.
또한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는데, 이는 한 번뿐인 인생에서 남들만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포모 증후군에 빠지지 않으려면, 현재의 행복에 충실하고, 당장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으로 오늘을 후회없이 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욜로(YOLO)의 유행과 함께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자 하는 무한탐색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이직을 통해 경력을 쌓으며, 아예 직장생활을 거부하고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는 항상 새로움을 향해 새로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융통성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무한 탐색의 과정이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융통성의 단점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무한 탐색, 다시 말해 과도한 융통성은 과연 좋기만 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피트 데이비스는 이러한 "무한 탐색 모드의 융통성은 곧 '결정 마비(decision paralisys)'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여기저기 탐색만 하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전념할 자신이 없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선택지가 없는 삶은 견디기 힘듭니다. 그런 고통스러운 삶에 선택지가 늘어난다면 자주성, 개성, 유연성 등이 살아납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선택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병들게 한다."라고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선택의 심리학>>에서 말했습니다.
개념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선택지를 원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택의 역설"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메뉴판이 길고 복잡한 식당보다 몇 가지 음식만 만드는 식당이 오히려 더 성공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왜 선택의 자유가 커질수록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배리 슈워츠는 '쇼핑 피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모든 결정과 구매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좋은 선택임이 확실하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며, 자신이 포기한 선택지에도 괴로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더 많은 선택지를 탐험할수록 "선택하지 않은 대안이 더 많이 쌓인다"라고 슈워츠는 설명합니다. 무한 탐색 모드는 미련을 낳습니다.
또한 과도한 선택의 자유는 우리에게 지나치게 많은 책임감을 부여해서 결정 마비를 일으킨다고 슈워츠는 말합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골랐는데, 내가 고르지 않은 선택지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내가 한 선택에는 가혹한 평가가 뒤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능력, 마음껏 떠날 수 있는 능력, 즉 융통성은 어느 시점까지는 즐겁지만, 그것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무한 탐색 모드는 "고립"을 낳을 수도 있습니다. 무한 탐색을 하다 보면, 그 누구와도 그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으며, 아무도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는 상태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아노미"라 할 수 있습니다. 아노미는 흔히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는 혼돈 상태'를 말하는데,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이 주장한 사회 병리학의 기본 개념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아노미 상태에서 신경증, 범죄, 비행, 자살과 같은 부적응에 빠지며, 심한 분리감 내지 고립감을 느끼게 됩니다. 심한 고립감은 아노미적 자살에 이르게도 됩니다. 사람은 지나치게 많은 책임감도 싫어하지만, 아무런 책임도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소외감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책임지고 헌신할 수 있는 공동체를 갈망합니다. 책임감이 의미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무한 탐색 모드는 일명 '기회비용'을 치르는데, 새로운 경험에 집착하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 가지에 오랜 시간 몰두할 때만 겪을 수 있는 깊이 있는 경험을 놓치게 됩니다. 어떤 일에서 '깊이'를 얻고자 한다면 일정 시간의 지속 시간, 즉 전념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균형 있는 삶 : 새로운 융통성
우리는 변화하는 세상의 새로움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에 대해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진짜 자아를 발견해야 합니다. 진짜 자아를 발견했다면 이제는 탐색을 멈추고 자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전념해야 합니다.
전념하지 않으면 발견한 진짜 자아도 가짜인 것처럼 느껴지고 또 다른 진짜 자아처럼 보이는 것을 찾아 또 다른 탐색의 길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너무나 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수평적인 선택지들 사이에서 전념할 새로운 것을 찾았다면, 이제 새로움의 추구는 수직적인 선택이어야 합니다. 달리 말해, 깊이를 더해가는 것입니다. 깊이를 더해 갈 때마다 더 새로운 것이 발견될 것입니다. 그것이 전문가의 길이고, 장인의 길이고, 프로의 길입니다.
이를 위해 융합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방식만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난 기술이나 방법 등을 자신의 일을 발전시키는 도구로 활용함으로써 자신의 일을 더욱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새로운 융통성입니다. 세상의 새로운 것들을 탐색하고 배우지만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것을 더욱 발전시키는 도구로 융통성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한탐색 시대에서 제대로 융통성 있게 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문학과 철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정체와 극복 방법 (2) | 2023.02.13 |
---|---|
중요한 결정 시 유용한 3가지 의사결정 방법 (0) | 2023.02.13 |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가 뭔가요? (2) | 2023.02.06 |
불가지론자(agnostic)에게 영원이란? (0) | 2023.01.29 |
잘 사는 법, 카르페 디엠(carpe diem)? (1) | 2023.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