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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철학 이야기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가 뭔가요?

by 박노찬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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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란?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는 폴란드 철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후기 근대성'의 성격을 분석한 책으로서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수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바우만은 전통적인 근대성을 딱딱한 고체에 비유한 반면, 현대의 근대성을 흐르는 액체에 비유하면서 현대를 후기 근대성의 시기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대 사회가 곧 "액체 근대"인 것입니다.

많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이 종종 '포스트(post)'를 벗어남을 뜻하는 탈(脫)의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바우만에게 있어서 '포스트(post)'는 연속적이지만 질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즉 바우만은 현대의 특징을 전통적인 대립 관계가 붕괴되어 서로 섞여 흐르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림-지그문트 바우만
지그문트 바우만(출처: 나무위키)

 

액체 근대의 또 다른 이름, "무한 탐색 시대"

 

<<전념(Dedicated)>>의 저자 피트 데이비스는 자신의 책에서 "바우만의 설명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어느 한 가지 정체성, 장소, 공동체에 스스로 묶어두기를 원치 않으며, 그래서 마치 액체처럼 어떠한 형태의 미래에도 맞춰서 적응할 수 있는 유동적 상태에 머무른다."라고 말했습니다.

 

데이비스는 현세대를 정의하는 말로 "무한 탐색 모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여러 선택지를 열어 둔 채 삶의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색만 하는 것을 일컫는 것입니다. 그는 이것이 바로 "액체 근대"라 하였습니다. 무한 탐색 시대는 액체 근대의 또 다른 이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야 말로 열린 문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택지가 너무나 많고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어떤 일에 흥미를 잃더라도 또 다른 선택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점 또한 있습니다. 새로운 선택지가 더 큰 만족을 주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선택지가 많기 때문에 한 가지 일에 몰두할 수 없게도 됩니다.

 

데이비스는 "최근에 나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움의 홍수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화요일 밤이야말로 내가 갈망하는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을 온전하게 쏟아부을 수 있는 친구들, 나보다 더 나은 누군가를 찾았다고 나와의 관계를 끝내지 않을 친구들은 새로운 방이 줄 수 없는 행복을 내게 안겨 주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림-무한탐색
무한 탐색

 

'반문화'가 필요한 시대

 

현 시대의 주류문화는 한 곳에 묶여있지 말고 계속 옮겨 다니며 이력을 쌓으라고 권합니다. 한 가지 기술보다는 어느 곳에든 적용할 수 있는 추상적인 능력을 가치 있게 여깁니다. 무엇이든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든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말합니다. 지나치게 깊이 마음을 주지 말고 상대방 역시 그렇더라도 놀라거나 상처받지 말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언제나 선택지를 열어두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피트 데이비스는 이러한 문화에 상반되는 '반문화'의 필요성을 주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전념하기'입니다.

 

위에서 나열한 현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다른 선택지를 기꺼이 포기하고, 특정한 무언가에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고 애정을 쏟는 '전념하기의 영웅들'입니다. 이들은 매일, 매년 꾸준하게 시간과 노력을 쌓아 스스로 극적인 사건 자체가 됩니다. 그들은 수많은 시간 동안 다음과 같은 대적들과 맞서 싸웁니다. 그 대적은 일상이 주는 지루함, 다른 선택지도 기웃거리고 싶은 유혹,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불안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림-전념
전념(피트 데이비스)

 

두 문화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대인들

 

현대인들은 위에서 말한 두 가지 문화, 즉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와 '전념하기의 반문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탐색을 할 것인가, 하나에 정착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 개인의 마음 속에도 존재하며, 전체 사회 내에도 존재합니다.

 

피트 데이비스는 우리가 진짜 애정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 대상은 막상 선택지 열어두기 문화에 속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에 헌신하고 몰입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 골목에서 50년째 자리를 지켜온 작고 허름한 맛집에서 식사하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군가가 성장하여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짜릿한 서사는 없다는 것입니다.

 

데이비스는 우리에게 책을 통해 묻습니다. 전념하기의 영웅들에게 지대한 사랑과 감탄을 보내면서도 정작 자기 스스로 전념하는 사람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느냐고 말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삶은 어떤 모드인가요?
전념하기 모드인가요, 무한 탐색 모드인가요?
어떤 모드에 속하기를 원하시나요?
무한 탐색 모드 중이지만 전념 모드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으신가요?
전념할 대상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요?
그렇다면 여전히 무한 탐색 중이시군요. ㅎ ㅎ ㅎ

 

내 삶을 돌아보니 여전히 무한 탐색 중인 것 같다.
전념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조용필의 <꿈>이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저기 저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출처>위키백과 / "전념"(피트 데이비스 저,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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