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不可知論)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불가지론 agnosticism이란 "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종교적 인식론"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학설은 유신론과 무신론을 모두 배격합니다. 또한 철학에 있어서는 "사물의 본질이나 궁극적 참모습은 사람의 경험으로는 결코 인식할 수 없다는 이론"으로 설명합니다.
불가론자의 영원
그렇다면 이런 불가론자들에게도 영원이라는 개념이 있을까요?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 브뤼크네르는 그의 책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가지론자인 우리를 지탱해 주는 놀라운 불꽃은 생이 끝날 때 오는 해방이 아니라 지금 여기, 소박한 일상의 산문 속에 있다는 믿음이다. 영원은 지금 이 순간의 우리 삶이다. 다른 영원은 없다."
불가론자의 사상을 말하면서 신학적 주제인 천국이나 영생에 대한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불가지론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강조점을 알아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있는 것들입니다.
불가지론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라, 죽음 이전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지금이라는 현실의 삶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알 수 없지만 현재의 삶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죽음 이후가 아니라 죽음 이전의 삶을 잘 사는 것, 달리 말하면 잘 죽는 삶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그들의 주요 관심사라 할 것입니다.
불가지론자의 죽음 인식
죽음에 대한 인식도 좀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불가지론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죽음은 당연히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 떠나보내고 홀로 이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 더 끔찍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죽음은 존재론적 재앙인 것입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많은 이를 먼저 보내는 것"이라고 괴테가 말했다고 합니다. 오래 살수록 슬픈 일을 더 많이 겪게 되는 것입니다.
찰나의 영원뿐
불가지론자에게 있어서 영원이란 찰나의 영원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불멸의 길은 살아있는 동안 사랑하고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삶을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생을 대하는 브뤼크네르의 태도를 다음 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생이 언제가 우리를 떠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다음 세대에게 희열을 넘겨 줄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충분히 생을 사랑해야만 한다" -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
생에 대한 불타는 욕망
저는 위의 브뤼크네르의 글을 보며 생을 향한 절절히 불타는 욕망을 발견합니다. 나에게 이런 절절한 생을 향한 욕망이 있는가, 정말로 한 번뿐인 이 생의 삶을 잘 살아야겠다는 불타는 열정이 있는가를 돌아봅니다.
적절히 타협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영원이라는 찰나의 시간들을 쓸데없이 흘려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있고, 새로운 일들에 대한 결심이 서지만 용두사미로 그친 적이 얼마나 많은지, 새로운 생각과 결심을 끝까지 밀어붙일 지구력이 부족함을 절실히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생에 대한 절절한 욕망이 없기에 작은 어려움들 앞에서 주저앉기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요? 돌파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그저 열심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불타는 에너지 그것이 부족합니다. 오늘도 철학자의 글을 빌어 자신을 채찍질합니다.
여러분에게는 생에 대한 불타는 욕망이 있습니까?
영원이라는 찰나의 시간은 우리가 한눈 파는 사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과거의 시간으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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