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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야기

불황기의 똑똑한 소비 전략, 체리슈머

by 박노찬 202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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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보릿고개'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요즘 수십 년 만에 찾아온 인플레이션 때문에 경제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고환율로 인해 수입물가는 치솟고, 현금의 구매력은 현저히 낮아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지갑은 쉽사리 열리지 않습니다. 또한 새로운 소비 형태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체리슈머"의 등장입니다. 당신은 체리슈머인가요?

체리슈머란?


얼마 전 저는 쿠팡의 와우 클럽 멤버십을 해지했습니다. 1달에 4,990원의 회비를 내고 있는데, 쿠팡 앱을 통한 구매를 한 번도 안 하고 지나가는 달이 있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구매할 물품이 생길 때 다시 가입하자는 생각으로 일단 멤버십을 해지했습니다. 요즘 OTT 서비스를 구독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보고 싶은 콘텐츠가 있을 때만 구독을 재개하는 일명 '징검다리식 구독' 행태를 보이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고 합니다. 불황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것입니다. 비용 대비 효용을 극대화시키려는 소비 트렌드입니다.

체리슈머란 말은 본래 '체리피커'에서 따온 말이라 할 수 있는데, 체리피커란 구매는 하지 않으면서 혜택만 챙겨가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케이크 위의 달콤한 체리만 쏙 뽑아먹는 행위에 빗댄 표현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먹튀 소비자'라 할 수 있겠지만, 최근 이런 소비 형태가 발전하여 일반화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렇게 한정된 자원으로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사용하는 소비자를 <트렌드 코리아 2023>에서는 "체리슈머"라 명명하였습니다.

체리슈머

체리슈머 전략 3가지


1. 조각내기

'조각내기'란 필요한 만큼만 소량으로 구매하는 전략입니다. 개당 가격은 대량 구매 가격보다 비싸지만 필요한 만큼만 소량 구매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마트에서 낱개 상품을 구매하는 것입니다. 대량 구매 시 낭비되는 물건의 쓰레기를 줄일 수 있기에 더 합리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포장비를 아낄 수 있어 좋은 판매 전략입니다. 실제로 대형마트의 낱개 및 소량 판매 비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에서도 한두 끼 분량의 채소를 소분해 팔고 있으며, 맥주나 와인, 소주 등의 주류도 250ml나 375ml짜리 소용량 제품의 판매가 급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심지어 롯데쇼핑의 '보틀벙커'에서는 다양한 와인을 50ml 단위로 구매해 시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합니다. 뷰티업계에서는 샘플 키트나 트라이얼 키트를 선보이며 이러한 체리슈머의 소비 흐름을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애견 간식이나 섬유유연제와 같은 품목들도 체험용 키트로 등장했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집도 조각내는 비즈니스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유니토'라는 벤처기업은 세입자가 외박을 하는 날에 일반인에게 빈방을 빌려주고 이익의 일부를 세입자에게 돌려주는 방식의 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심지어 명품도 조각내어 즐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명품을 직접 구매하는 대신 명품의 빈티지 단추를 귀걸이나 목걸이로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고, 샤넬이나 루이뷔통 단추 6~7개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40~70만 원선에 거래되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소비형태를 '타이니 럭셔리'라 부르는데, 체리슈머의 조각 전략의 단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조각내기


2. 반반 전략

반반 전략은 꼭 사고 싶지만 혼자 비용을 지출하기가 부담스럽거나 조각 내기도 불가능할 때, 함께 비용을 부담하고 함께 효용을 누릴 사람을 찾는 전략입니다. 예를 들면 입주민 오픈 채팅방을 통해 배달음식을 공동으로 주문하고 배달료를 1/n로 나눠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SNS나 중고시장에서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대량 판매 상품을 소분해서 재판매하는 것인데, 현행법상 소분된 화장품이나 식품, 건강기능식품 등의 판매가 금지되고 있지만, 불황기를 견디는 소비 전략으로 활용되면서 증가하고 있는 거래방식입니다. 이러한 소분 거래는 단순한 절약 차원을 넘어서 재미나 성취감을 누리는 놀이로 볼 수 있습니다.

당근마켓은 이러한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같이 사요' 서비스를 론칭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공동구매 플랫폼 '올웨이즈'는 주어진 시간 안에 목표 인원이 달성되면 할인된 가격에 '팀구매'가 가능한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OTT 계정 공유 앱인 '피클플러스'에서는 '파티매칭'기능을 통해 넷플릭스나 왓차 등의 OTT 서비스를 함께 구매할 사람을 매칭 시켜 주고 있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참으로 'N띵'에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우리 집 식구들은 '밀리의 서재'라는 전자책을 N띵하고 있습니다.

3. 말랑 전략

말랑 전략은 말 그래로 말랑말랑하게 유연한 소비를 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장기계약의 노예로 일정 비용을 매달 지출하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계약해 유연성을 확보하는 소비 전략입니다. 앞에서 말했던 '구독료 다이어트' 또는 '징검다리 구독 전략'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업계에서도 이 전략을 마케팅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는 업체가 있는데, '술담화'라는 업체는 '쉬어가기' 옵션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매달 소믈리에가 엄선해 전통주를 보내주는데, 자신의 취향에 맞는 술이 아리라면 건너뛸 수 있고, 지난달에 받은 술이 아직 남아 있다면 쉬어가기 옵션을 활용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소비자 중심의 마케팅을 한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고, 구독을 계속 유지토록 하는 것입니다.

통신사들도 이러한 말랑 전략을 마케팅 전략으로 하고 있는데, LG U+에서는 '유독'서비스를 통해 소비자가 언제든지 원하는 서비스만 골라서 구독할 수 있게 했으며, SKT도 'T우주'를 통해 소비자가 자신에게 맞는 구독 서비스를 직접 선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높여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해지가 쉽도록 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도 단기간 동안만 가입하고 비용을 지불하는 '미니보험' 상품을 내놓고 있는데, 예를 들면 캐롯손해보험은 운행한 주행거리만큼만 후불로 보험료를 납부하는 '퍼마일 자동차보험'을 출시하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여행업계에서도 투숙 하루 전까지만 취소하면 숙박료 전액을 환불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쿠팡트래블과 에어비앤비를 들 수 있습니다.

체리슈머의 등장 원인


1. 경기 악화

이러한 체리슈머가 등장한 배경내지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직접적인 원인은 전례없이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악화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젊은이들이 체감경제고통지수가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는 분석이 2021년 한국경제연구원 발표를 통해 나왔는데, 이러한 경제적 위기를 돌파할 방법으로 체리슈머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2. 1인 가구의 증가

또한 이러한 체리슈머의 등장 배경에는 최근 1인 가구의 비율이 증가한 데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1인 가구의 작고 유연한 소비 선호 경향이 소비 트렌드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놀랍게도 2022 행정안전통계연보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1인 가구 비율은 무려 40.3%에 달했습니다. 총인구수는 줄었지만 세대 수는 증가하는 특이한 현상이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3. MZ세대들의 성향

체리슈머의 주 세대는 단연 MZ세대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저성장 시대에 태어나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는 것입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었던 부모 세대 밑에서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가진 세대이지만, 정작 성인이 되고 보니 집 한 칸도 마련하기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높은 교육에 고급스러운 경험을 했기 때문에 취향과 욕망의 수준은 상당히 높습니다. 반면 재정적 여건은 넉넉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치밀한 재무관리에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그 어떤 세대보다 똑똑한 세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명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즐깁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소비를 안 하거나 줄이는 수동적 태도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정형화된 기성세대의 소비 대신 그들만의 창의성을 발휘해 욕망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각내기나 반반 전략, 말랑 전략을 통해 자신들의 창의적인 소비를 해 나가는 것입니다.

기업들의 대처법

먼저 기업들은 이 체리슈머의 등장이 시대의 흐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단지 꼼수를 부리는 진상 소비자나 공짜만 바라는 블랙컨슈머로 바라봐서는 안 되며, 작고 유연한 소비를 원하는 소비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서울대 김난도 교수는 사회심리학 용어인 '문간에 발 들여놓기 전략'을 소개합니다. 어떤 큰 부탁을 하기 전에 먼저 작은 부탁을 해서 허락을 받고 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큰 부탁을 하면 더 쉽게 들어주게 된다는 일종의 설득 기법입니다. 예를 들면 작은 샘플이나 아주 단기간 특정 서비스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한번 경험한 소비자는 그 브랜드나 제품의 문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브랜도 친숙도를 향상할 수 있고, 다른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탬버린즈'라는 프리미엄 향기 브랜드는 3,000~5,000원 정도의 샘플 키트를 상시 판매했습니다. 누가 샘플을 돈 주고 살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작고 감성적인 패키지에 소비자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고, 신 상품 출시 3일 만에 완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또한 삼성전자는 최근 엔트리급 초저가 라인 '갤럭시 A23' 모델을 출시해 체리슈머 고객 확보에 나섰는데, 저도 이 제품을 써보니 굳이 프리미엄 모델을 쓸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예전에 쓰던 S시리즈보다 스펙이 훨씬 더 훌륭함을 느꼈기에 앞으로도 A 시리즈를 구매할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똑똑하지만 아름다운 소비를 제언하며


요즘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며 다양하고도 창의적인 소비 전략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환경은 위기를 가져오지만 또한 새로운 창조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반응 내지는 생존 전략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는 일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이 또한 창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극복될 것입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갖게 하는 측면입니다.

우리는 최근의 경제 현실 속에서 보다 똑똑하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실로 짠 테크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한편 주의할 점은 자신의 것을 아끼기 위해 타인이나 기업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한정된 파이를 누가 더 많이 먹느냐의 게임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상호 보완 내지는 상생 또는 윈윈 전략을 펼쳐야 합니다. 절약을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나 방법을 동원하되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해서는 안됩니다. '짠 테크'만큼 '소비자 윤리'가 강조되어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체리슈머 시대를 맞이해 다양한 소비전략과 그에 맞는 다양한 판매 전략이 맞닿아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승리하는 위대한 불황 극복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확신하건대 이런 불황을 통해 새로운 경제로 도약할 다양한 새로운 방법과 전략들이 탄생할 거라 봅니다. 똑똑하고 합리적이되 아름다운 소비문화를 이루어가는 선진 대한민국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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