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근성, 나와는 상관없는 단어일까? 나와 당신이 겪는 두려움의 상당 부분이 속물근성 때문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는가? 당신도 속물근성의 피해자다. 지금 부정할지라도 이 글을 읽고 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들의 두려움의 근저에 있는 속물근성의 정체를 파해쳐 보자.

어른이 된다는 것의 의미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어렸을 때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무조건적인 애정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었을 때는 매우 조건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지위에 따라 차별적인 관심과 애정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우리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냉담한 인물들, 속물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우리 자리를 차지한다는 의미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속물들의 행동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지위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어른이 된 우리는 더 이상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며, 매우 조건적인 사랑만을 받게 된다. 나이가 들면 애정은 성취와 관련된다. 그래서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거나 계급이나 명성을 얻는 일이 중요시되게 된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로 인해 받게 되는 관심은 우리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감정적 욕구는 충족하지 못한다. 왜?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에 목말라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떠한 지위에 있든지 말이다. 우리는 정말 사랑에 목마른 존재들이다.
속물근성 snobbery
'속물근성'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 자제와 구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 nobilitate'라는 말을 적어 놓았는데, 이것은 작위가 없다는 뜻으로 줄여서 's.nob'으로 표기하였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즉,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어떤 사람을 속물이라고 말할 때는 그 사람을 경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속물의 독특한 특징
속물의 가장 큰 특징은 사람을 단순히 지위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똑같이 본다는 것이다. 이러한 속물의 일차적 관심은 권력에 있으며, 시대적으로 권력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관심의 대상도 바뀌었다. 예를 들면, 기원전 400년 스파르타 시대에는 군인, 중세로마시대에는 주교, 1815년 바이마르 시대에는 시인, 1967년 중국에서는 농민들이 그들의 관심(존경) 대상이 되었으며, 그들과 영합했다.
속물은 명성과 업적에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아는 사람들의 외적인 환경이 바뀌면 누구를 자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삼는 것이 좋을지를 잽싸게 재평가해보곤 한다. 참으로 웃픈 일이다.
또한 속물은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이 직접 판단하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따라서 언론의 분위기에 그들의 사고가 쉽게 지배당한다. 언론들 역시 속물근성을 자극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워간다. 예를 들어 유명인들의 사생활에 대해 기사화하는 것 역시 속물근성을 자극하여 구독수(클릭수)를 늘리려는 수작이다. 언론들이 제정신을 차려서 서민들의 삶에 조금이라도 더 초점을 맞춘다면, 서민들의 지위에 대한 불만 역시 상당히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언론은 무엇이 사실이고, 가짜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있다. 상당수 유튜버들은 사실 진위를 파악하지 않은 채 가짜 뉴스를 양산해 낸다. 그들이 관심 갖는 뉴스는 오직 사람들의 클릭수를 올릴 수 있는 가십성 재료들이다. 일단 조회수를 올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최근 대중적 언론들은 전기차 선두주자인 테슬라에 대한 악의적 기사를 유독 많이 싣는다. 왜 그럴까? 테슬라가 그렇게 잘못된 회사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그 반대다. 너무나 좋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광고주인 레거시 업체들에게 상당한 위협이 되는 좋은 회사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곧 판이 뒤집힐 날이 올 것이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밝혀질 때, 속물근성에 찌들어 있는 언론들은 태도를 바꾸어 테슬라를 찬양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테슬라를 비판함으로써 주어질 이득이 남아있다고 판단하기에 작금의 태도를 지속하는 것이리라.
속물근성의 근원은 두려움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남들을 경시하는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라고 말이다.
두려움은 세대를 따라 전해진다. 즉 속물은 속물은 낳는다. 그래서 자신의 후손이 낮은 지위로 전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손을 닦달한다. 그들은 결코 자손들에게 낮은 지위가 곧 무가치한 존재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높은 지위 역시 곧 훌륭한 존재와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런 태도는 자손들에게 지위 강등으로 인한 두려움을 조성하며, 내적 평안을 얻을 수 있는 감정적 토대를 박탈해 버린다.
집단적 유행병
나에겐 속물근성이 없을까? 젊은 시절에 속물근성을 보고 분개했다고 해서 나중에 속물이 되지 않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거만한 사람에게서 무시를 당하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그들의 거만함에 분노하지만, 한편으론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자리에 오르기를 갈망하지 않던가? 그것이 사랑과 인정을 받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앓고 있는 집단적 속물근성 병은 아닌가?
우리는 왜 이런 병을 앓게 되었는가?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채워지지 않은 존엄(지위)에 대한 욕망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이러한 속물근성 병은 경멸하기보다는 슬퍼하고 이해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나가며: 감정적 형벌이 물질적 형벌보다 더 싫다
우리는 왜 그토록 높은 지위를 갈망하는가?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지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라고. 그렇다.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는가? 물질적 형벌은 견딜지언정, 감정적 형벌은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육체가 힘들어도 자존심이 높아진다면, 육체의 힘듬은 얼마든지 감내할 것이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다면 더 이상 참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평안을 내팽기고 부자가 되고자, 높은 지위를 얻고자 힘든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에 비참해하면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다. 과연 우리의 이 깊은 고통의 심연에서 무엇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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