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25. 우리는 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는가? 브루스 커밍스라는 미국 학자로부터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보자.
브루스 커밍스는 믿을 만한 사람인가?
그는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의 석좌교수이자, 1999년 미국 예술,과학 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됐으며, 앞으로 나올 <케임브리지 한국사>의 현대사 부분 편집장이다. 그의 주저는 <한국전쟁의 기원 > 1권. 이 책으로 미국 역사학회의 존 킹 페어뱅크 저작상을 받았다. 이 상은 19세기 이후 시대를 다룬 가장 우수한 저서에 수여하는 상이다. 2권으로는 국제연구협회의 퀸시 라이트 저작상, 김대중 학술상(2007), 제주 4.3평화상(2017)을 받았다. 이 외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2001), <김정일 코드>(2005),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2017) 등을 썼다. 이 정도면 학국현대사의 전문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6.25는 왜 일어났는가?
6.25는 왜 일어났는가? 이 점에 대해 당신은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소련 스탈린의 지시를 받은 김일성의 무력 남침으로 6.25가 시작되었다는 것 외에 달리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이것은 미국 트루먼 행정부의 공식 발표이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의 공식 사관이다.
3년간 실시된 미 군정의 영향
그런데 브루스 커밍스는 6.25전쟁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바로 1945년부터 1948년까지 3년간 미국이 남한에서 실시한 군정. 그것이 한국 현대사 형성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1947년을 주목한다. 미국 정책의 분수령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947년 수정된 일본 정책
커밍스는 1947년 1월에 작성된 한 자료에서 중요한 내용을 발견한다. 조지 마셜 국무장관은 딘 애치슨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린다. '남한에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그것을 일본 경제와 연결시키라.' 그 결과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일본 인접 국가들의 산업 복구 방침은 철회되고, 일본이 다시 경제적 거점으로 복원되었다. 이 정책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정책이다.
미국의 근본적인 오판
미국은 원래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식민지 반대 투쟁을 거쳐 위대한 나라를 건국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베트남 등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베트남에서는 프랑스에 협력했던 장교들을 다시 채용했다. 우리 한국은? 군대와 경찰로 일본에 협력했던 거의 모든 한국인을 다시 고용했다. 커밍스는 이러한 미군정의 결정을 무엇보다 가장 압도적인 중요 영향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보자. 1945년 한국인 항일 유격대를 추격하던 일본군 소속 대좌 김석원은 1949년 여름 동안 38선을 지키는 지휘관이 되었다. 또 일본군 장교이자 친구였던 두 사람은 1946년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한다. 그 두 사람은 바로 박정희와 김재규였다. 반면, 북한 지도부는 거의 모두 항일 유격대원 출신이었다.
무시된 인민위원회
1945년 해방 후 건국준비위윈회 산하에 전국 140개의 인민위원회가 세워졌다. 이념을 초월한 지방자치정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 군정이 들어서면서 공산주의 계열 조직망이라는 이유로 전면부인되었고, 친일 관료들이 재기용되었다. 반면 소련은 북한에서 인민위원회를 승인하고 간접지원하였다.
커밍스는 이 인민위원회를 매우 중요하게 보았다. 그러나 한국전쟁 관련 문헌에서는 거의 완전히 무시 돼왔다는 것이다. 그는 인민위원회를 오랜 시간 동안 깊이 연구했다. 특히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3년 동안 평화롭게 유지됐지만, 제주도 인구의 최소 10%가 끔찍이 학살되는 유혈사태로 끝났다. 그 학살은 누가 주도했는가? 바로 미국인들과 일본에 협력했던 한국인 장교들이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볼 때, 북한은 친일 매국노를 적대시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했을 것이다.
소련의 강력한 개입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 2권을 완성한 뒤 몇 년이 흐르자 소련의 한국전쟁 관련 문서가 기밀해제됐다. 그 문서에는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 소련의 강력한 개입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독자적으로 행동하기에는 스탈린은 너무나 엄청난 인물이었다. 결국 스탈린의 승인 하에 6.25는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개전 이후 소련의 행동은 아이러니하다. 소련 잠수함들은 한국 해역에서 신속히 퇴각했고, 군사 고문들은 철수하거나 귀국했다. 1950년 후반 북한이 가장 큰 위기에 빠졌을 때 스탈린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볼 때 소련은 승인은 하였지만, 전쟁에는 참전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이 참전한 이유 중 하나는 동북부의 자국 산업시설을 보호하는 한편, 1920년대부터 중국 공산주의 운동에 참여한 수만명의 한국인에게 보답하고자 한 것이라고 커밍스는 주장한다.
분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해방 후 분단이 없었다면 6.25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극적 이게도 분단은 이루어졌고, 전쟁은 발발했다. 브루스 커밍스는 1945년 이후 미국 지도자들이 유서 깊은 나라를 경솔하고 분별없이 분단시켰다고 비판한다. 결국 경솔한 판단이 전쟁을 불러일으킨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가 조사한 미 국무부의 많은 문서들에 따르면, 미국은 항일 유격대 출신의 한국인들이 집권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에 들어갔고, 이제 그들은 그런 항일 유격대의 후계자들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가지고 평양에 앉아 있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것보다 실패한 정책은 생각하기 어렵고, 해결책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커밍스는 말한다.
한국을 분단시킨 것이 자신의 조국 미국이었기 때문에 커밍스는 늘 책임감을 느낀다고 고백한다. 그 책임감이 한국 현대사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게 만드는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보다 깊은 역사적 탐구가 두 한국이 화해로 나아가는 최선의 처방이자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진실은 우리를 자유케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진실은 한국 전쟁을 둘러싼 주요 문서들 안에 들어있다. 우리는 그 진실을 <한국전쟁의 기원 1>이라는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나가며: 진실을 만나보자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은 40년 전에 출판되었다. 이 책은 왜 지금에서야 번역된 것일까? 한 가지 이유는, 1984년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금지도서 목록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분단되었다는 사실이며, 그 분단이 오늘까지도 지속되고 있다는 데 있다.
오늘 6.25전쟁일을 맞아 한국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고자 <한국전쟁의 기원>이라는 책을 소개하였다. 좀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비밀은 책을 통해서 찾기를 바란다. 한국어를 알고 우리가 볼 수 없는 미 국무부의 기밀문서까지 연구하면서 펴낸 한국현대사 전문 학자가 밝힌 비밀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밀을 풀어줄 것이다. 번역 출간된 지 한 달도 안 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최신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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